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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단 경기 리뷰 (vs 리버풀)
    Arsenal/Talk 2021. 11. 21.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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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버풀 원정은 누구에게나 힘들기에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고 보긴 했습니다만, 구너라면 4:0의 스코어 자체는 아쉬울 수 있을 겁니다. 패배를 떠나서, 현재 득실차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실점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개인적으로 4:0이란 스코어 자체에 크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아래 3번 목차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물론 경기력으로만 보면 애초에 예상했듯 트랜지션 싸움에서 거의 완패를 했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리버풀은 이미 유럽 최고 수준으로 트랜지션 싸움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완성된 팀이라는 점도 염두할 필요는 있습니다. 리버풀은 자신이 잘하는 것을 더 많이 할 수 있게끔 노련하게 경기 방향을 잘 유도했고, 아스날은 어린 팀인 만큼 나름 잘 버티다가 특정 시점 이후로는 완전히 그 페이스에 말려들었습니다.

    여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스트햄과 맨유가 덩달아 패배하면서 일단 리그 5위 자리는 수성하게 되었고, 아직 4위와도 승점 3점 차이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진건 진 거고, 그 전의 좋은 분위기를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감을 갖고 앞으로의 일정에서 이길만한 경기를 모조리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르테타도 경기 후 인터뷰에서 패배를 깔끔하게 인정했고, 램스데일 역시 인터뷰에서 월요일 아침에 선수들이 모여 오늘 경기를 리뷰할 것이라고 밝힌 만큼, 이 경기를 통해 어린 선수들이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깨닫고, 인정하며,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아 그것들을 극복해서 한층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 

    경기 내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자면, 일단 전반을 기준으로 아르테타가 구상한 기본 플랜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높은 지역에서는 가끔 전방 압박을 시도하긴 했으나, 전체적으로는 리버풀의 트랜지션 강점을 의식해 무리한 강도로 실시하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압박을 통해 오른쪽으로의 전개 유도가 좀 더 많았죠? 아무래도 공중볼에 좀 더 강점이 있는 토미야스가 오른쪽 롱볼을 차단하는 반면, 누노는 오버래핑을 자제하며 살라를 상대하고, 스미스 로우가 상황에 따라 협력 수비하거나 아놀드를 견제하고자 하는 기본 틀을 가지고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그러다가 상대가 전개 국면을 넘어서 중앙선 근처에 온 이후부터는 확실히 라인을 내리고 불필요한 압박을 줄이면서 간격을 유지하는데 힘썼고, 그렇게 해서 일단 실점을 막고자 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로 보였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인데요.

    볼 소유권을 가져온 이후 시점, 여기서부터는 좀 더 확실한 스탠스를 보여야 했습니다. 기존에 아르테타가 강팀 원정에서 해오던 대로 탈취 후 빠른 템포의 트랜지션을 가져가면서 템포를 살리든가, 아니면 나름 최근에 괜찮아진 선수들의 지공을 믿고 천천히 빌드업해나가든가 결정해야 했죠.

    그러나 오늘 아르테타의 스탠스는 매우 애매했습니다. 전자는 역습에서 믿을만했던 오바메양의 폼이 예전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고, 후자는 유럽 어떤 팀이라도 고전할 수밖에 없는 리버풀의 전방 압박 강도가 발목을 잡았죠. 아르테타는 둘 중 하나를 확실히 선택했어야 한다고 봤는데, 그러지 못하고 어정쩡했습니다. 전자치고는 높은 지역에서의 전방 압박이 꽤 있던 편이고, 후자치고는 살라를 의식한 누노의 전진이 평소보다 훨씬 없었습니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전방 압박 및 트랜지션에 몇 번 호되게 당한 이후부터는, 전자에 더 무게를 둔 것으로 보였습니다. (아래에도 언급하겠지만 후방 빌드업을 차근차근하기에는 로콩가가 압박에 허덕이며 판단이 느린 경우가 많았고, 파티는 옆에서 전혀 도움을 주지 못 했습니다. 물론 리버풀의 강도 높은 프레싱이 워낙 훌륭하기도 합니다)

    허나 전자에 무게를 둔 이후에도, 이를 100% 활용하지 못했는데 개인적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를 뽑고 싶습니다. (여기서는 일단 간단하게만 살펴보겠습니다. 추후에 시간 나면 따로 분석할 수도 있습니다)

    (1) 측면 반대발 배치 

    오늘 오른쪽에 사카를 배치하면서 그의 스피드를 오바메양과 함께 주 무기로 삼으려는 의도였겠지만, 잘 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입니다. 오바메양이 그나마 마팁과 반다이크로 대변되는 피지컬 괴물들에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루트는 파란루트 침투뿐이에요. 그나마 남아있는 장점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반대발로 측면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위와 같이 빨간 루트의 패스를 쉽게 할 수가 없고, 오바메양을 빠른 템포로 지원할 수가 없게 됩니다. 템포를 늦추는 순간, 상대 뒷공간은 훨씬 줄어들고, 동시에 오바메양이 반다이크, 마팁에 맞서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장점이 사라지게 됩니다.

    사실 오바를 살리지 않고, 직접 돌파하면서 수비를 흔들 수도 있습니다. 리버풀의 살라가 그런 타입이죠?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활용할 거라면, 오바메양 톱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것들이 애매하다는 거죠.

    만약 사카를 살라처럼 1on1 시키고 싶었으면, 중앙에 좀 더 센터백을 붙잡고 비벼줄 수 있는 라카 톱을 쓰면서, 양 풀백을 티어니, 누노로 가져갔어야 할 겁니다. 반대편 티어니를 기존 경기들처럼 상당히 깊게 오버래핑시켜 경기장을 좌우로 넓게 쓰고, 그에 따라 리버풀 4백 사이사이의 공간이 넓어지게끔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간격이 넓어진 만큼 상대 센터백의 도움수비도 느려지니까요. 뿐만 아니라 토미야스보다 훨씬 공격이 매서운 누노 같은 선수가 사카 곁에서 오버래핑, 언더래핑으로 상대 교란을 이루어내면, 확실히 사카의 1on1 능력을 풀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죠.(살라 곁에서 아놀드가 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리버풀을 상대로, 더군다나 원정에서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상당히 리스크가 큽니다. (참고로, 누노와 토미야스의 스위칭이 경기 도중 잠깐 나오긴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방식을 안 쓴 건 충분히 납득 가능할진대, 그럼 대신 역습형 톱 오바메양을 살리는 방식을 택했다면, 측면 배치도 그에 맞게 바꿨어야하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경기를 보면, 사카가 의외로 적절한 타이밍에 오른쪽 측면에서 볼을 배급받은 경우는 꽤 있었으나, 모두 다 템포를 전혀 살리지 못했습니다. (물론 사카 본인의 판단력이나 드리블 컨디션도 안 좋아 보인 것도 있었습니다만)

    반면 라카제트가 트랜지션 상황에서 터치라인 근처 공을 건네받은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사카와 달리 상당히 효율적인 역습 전개에 성공했습니다. 라카제트의 준수한 패스 능력도 능력이지만, 정발이기 때문이죠. 템포를 살릴 수 있는 빨간 루트의 패스지를 모두 이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아스날이 이번 경기에서 역습을 효율적으로 사용한 거의 모든 루트가 오른쪽 측면에서 잡은 정발 라카제트→오바메양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오바메양의 유일한 유효슈팅 장면도 이 루트고요.

    이미 이전 왓포드와의 경기에서 오른쪽 템포를 살리기 위해, 라카와 사카의 스위칭을 자주 가져갔던 아르테타이기에 오늘의 선택이 더 안타까웠습니다. 만약 정발대로 오른쪽을 스미스로우, 왼쪽을 사카로 배치했다면 오늘 아르테타의 목표에 맞는 장면들이 훨씬 많이 나왔을 것 같다는 것이 개인적 의견입니다.

     

    (2) 트랜지션(수→공) 국면 완성도 부족

    기본적으로 이 글에서도 언급하고, 리버풀 전에 대한 우려 요인으로 이야기한 적도 있지만, 현재 아스날은 여러 국면 중 수→공 전환(트랜지션) 국면에서 매우 완성도가 떨어집니다. 이러한 약점이 리버풀 전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는데요.

    이것도 정말 간단하게 한 장면으로만 살펴볼게요. 매번 반복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한 장면으로도 충분합니다. 어찌어찌 볼을 잘 탈취한 이후, 트랜지션 국면의 상황입니다. 리버풀도 상당히 올라와있고, 현재 라카제트 앞에 아스날은 오바메양과 사카, 그리고 리버풀은 파비뉴, 반다이크, 마팁이 다입니다. 즉 3vs3인 상황으로 매우 좋은 상황이죠.

    게다가 빨간 공간으로 표시해놓았듯, 라카제트가 압박을 받는 상황도 아니고 상당히 넓은 공간을 움직일 수 있는 여유가 확보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파란색의 오바메양과 사카는 뭘 해야 될까요? 그냥 뒤도 안 보고 앞으로 달려야죠. 둘 다 빠른 스피드를 가지고 있고, 그러려고 아르테타가 전방에 둘을 배치하면서 선발로 기용한 거니까요.

    라카제트는 현재 등 뒤에 있는 오바메양은 시야가 없어 보지 못했지만, 사카 쪽은 똑바로 보고 있죠. 그러면 사카는 반다이크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파란색 루트로 라카가 패스 줄거라 믿고 뛰어야 합니다. 트랜지션의 기본이죠. 기점 한 명이 키핑하고, 나머지는 침투 다양성 확보를 위해 전방으로 달린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사카는 제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이걸 공을 받기 위한 제스쳐라 보고, 라카제트가 사카에게 공을 건네는데, 이미 파비뉴를 비롯한 리버풀 주변 선수들이 라카제트의 이용가능 공간을 많이 축소시켜놓은 상태인데다가, 아무런 효율도 없는 짧은 패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다이크는 위험을 즉시 감지하고 사카를 방해하려 튀어나오고, 사카가 등진채로 볼키핑하다가 반다이크로부터 반칙성 플레이를 당하면서 리버풀은 이 위기를 넘기고, 아스날은 이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리게 됩니다. 

    반다이크 너머에 있는 저 드넓은 파란 공간은 완전히 빈 상태였는데 결국 아무도 이용을 못한 것이죠. 아르테타 아스날의 현재 트랜지션 국면에서의 완성도가 이 정도로 떨어진다는 걸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건 개인적으로 아르테타가 향후 경기 리뷰에서 분노해야 할 장면 중 하나가 아닌가 싶네요. 저 또한 경기 보는 도중 상당히 화가 났던 장면이기도 하고요. 왜 침투를 안 하나요.

    사카 역시 더 좋은 선수가 되려면, 오늘처럼 리버풀을 상대하기 위한 우리 팀의 기조와 컨셉 정도는 완벽히 이해한 상태로 임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장면을 활용하기 위해 오바, 사카를 선발 출장시킨 건데, 저기서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패스를 받다니요. 선수들의 트랜지션 국면에 대한 이해도와 아르테타 감독의 빠른 완성도 향상이 시급해 보입니다.

     

    (3) 파비뉴

    이건 따로 캡처는 안 하겠습니다만, 경기를 보신 분들 모두 많이 느끼셨을 겁니다. 현재 아스날의 선발 라인업에서 결국 트랜지션 국면의 기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는 라카제트와 로우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왼쪽 측면은 누노가 오버래핑을 의도적으로 자제하고, 삼비가 상대적으로 압박에 상당히 고전하면서, 로우 역시 덩달아 고립되며 위력을 잃었기에, 오른쪽을 많이 활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요.(물론 로우가 아놀드 견제를 위해 많이 내려간 것도 있음) 따라서 자연스럽게 트랜지션의 핵심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었던 라카제트를 정말 잘 괴롭혀 준 선수가 바로 파비뉴였습니다. 

    물론 클롭 감독의 묘수도 있었습니다. 지난 웨스트햄과의 경기에서 기존의 433대로 메짤라를 공격적으로 이용하면서 역습에 취약점을 드러냈기 때문에, 오늘 경기에서는 티아고를 자주 내리면서 파비뉴의 빌드업 및 수비 부담을 줄여주었고, 그에 따라 아스날의 높은 지역에서의 전방 압박을 더 잘 풀어냄과 동시에, 파비뉴가 라카제트를 잘 마크할 수 있도록 체력 보존에도 성공했습니다.

     

    (4) 오바메양

    역습형 톱 오바메양의 이점을 살리고자 한 것이 기존의 플랜이었든, 아니면 경기 도중 변경된 플랜이었든 간에 이 쪽에 무게를 둔 의도가 사실상 먹히지 않았던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오바메양 선수 자체의 폼 하락에 있습니다. 이전에 FA컵을 우승하던 시절에는 정말로 티어니가 롱패스 뻥 차면, 오바메양이 드리블과 스피드로 해결하기도 했었지만, 지금의 오바메양은 그렇지 않죠. 일전에 말씀드렸다시피, 특히 터치의 문제가 큽니다. 오늘도 여러 번 그런 장면이 목격되었고요. 그러다 보니 리버풀의 조타처럼 똑같이 아래로 내려와서 공을 받아주더라도, 안정감에서 너무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들입니다. 누노가 오바메양에게 좋은 전진 패스를 했고, 오바메양이 내려오면서 받습니다. 마팁도 딸려왔죠? 그리고 이걸 잘 아는 로우가 그 딸려온 마팁의 뒷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전력질주 침투를 시작합니다. 이 루트는 익숙한 루트죠. 토트넘 전 로우의 어시스트도, 아스톤 빌라 전 로우의 쐐기골도 같은 루트로 나왔습니다.

    한편 오바메양이 내려와 공을 터치하는 위치가 왼쪽 빨간 선이고, 나일스의 위치가 오른쪽 빨간 선인데요. 

    오바메양의 퍼스트 터치가 어느 정도로 안 좋냐면, 터치 한 번에 공이 오바메양과 나일스의 중간까지 갑니다. 결국 둘의 동선이 겹치게 되어서 나일스가 공을 잡게 되죠. 이런 수준의 퍼스트 터치 때문에, 오바메양이 내려온 공간으로 스미스로우의 침투가 몇 번이나 이루어졌음에도, 그쪽으로의 제대로 된 활용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스날이 살라와 아놀드를 누노, 로우로 적절히 잘 억제하던 와중에, 별 의미 없는 거친 파울을 하면서 오른쪽 지역에서의 위험지역 프리킥을 내준 장면도 개인적으로는 아쉬웠습니다. 아놀드의 킥 능력을 고려했을 때, 웬만해선 프리킥을 허용하면 안 되는 위치였는데, 역시나 그 위치에서의 프리킥이 선제골로 연결되는 걸 보면서 참 마음이 쓰렸습니다.

     

    (5) 기타

    그 외에 반대 전환이 너무 부족했던 것(토미야스나 화이트의 왼발 사용을 통한 반대 전환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음), 우측을 주 공격 루트로 삼은 것에 비해 라카제트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파티, 사카, 토미야스)들의 컨디션이나 핏 상태가 딱히 좋지 않았다는 점, 세컨볼 싸움에서의 포지셔닝 측면에서도 많이 밀렸다는 점 정도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3.

    추가 실점에 대해 잠깐 말해보자면, 사실 선제골 이외에는 팀적으로는 아주 큰 의미를 둘 필요까지는 없다는 의견입니다. 2번째골은 누구나 다 알다시피, 누노의 온전한 개인 실수이고요. 3,4번째 골은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무리한 전방 압박을 하면서 발생된 득점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기서 무리한 전방 압박이라 표현한 이유는, 첫째로 그냥 2:0 상황에서 추가 실점을 막기로만 마음먹었다면 그렇게 마무리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굳이 어설픈 압박 강도를 유지했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그 압박 자체가 팀 단위의 조직적 시스템 압박이 아니라, 단순히 교체로 나온 외데고르의 동료를 향한 압박 재촉에서 비롯된 엉성한 압박이었다는 점에서 기인합니다.

    이전에도 언급했듯, 조직적인 전방 압박과 그냥 개인이 열정에 힘입어 마구 달리는 것은 차원이 다른데요. 오늘 교체로 나와 충분한 체력을 가진 외데고르나 나일스가 개인식 압박을 자주 시전하면서, 예전의 산체스처럼 동료들에게 같이 압박해주길 종용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체력을 거의 다 소모한 70분대의 선발 출전 선수들에게는 오히려 안 좋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어설픈 압박은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니까요. 물론 외데고르나 나일스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지고 있는데 교체로 나와서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었을 겁니다. 그저 선수간 소통의 부재 정도로 볼 수 있겠고, 동시에 체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다른 선수들의 집중력 저하도 어느 정도 있었겠죠.

    실제로 3번째 실점 장면을 보면 위 그림에 앞서 외데고르가 동료들에게 올라오라는 손짓을 보내고, 그와 동시에 파티나 토미야스가 상당히 무리하게, 시스템 압박이 아닌, 그냥 개인 압박을 시전합니다. (시스템 압박이 아닌 이유는 파티 같은 선수가 지금 저 자리까지 올라가 위치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흰색 공간이 완전히 비게 되고, 나일스는 그 공간을 커버하지 못하는 어설픈 전방 압박의 전형적인 장면이 나오게 됩니다.

    여긴 또 토미야스가 뛰쳐나감과 동시에, 이번에는 나일스가 엄청 나가 있죠? 당연히 비게 된 흰 공간으로 패스가 들어가고 4번째 실점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사실 이런 식의 압박은 2:0으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크게 할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하더라도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쉬운 식의 주먹구구식 개인 압박입니다.

    분명한 건, 아스날이 굳이 이런 어설픈 전방압박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고, 아르테타가 계획하거나 의도한 것 같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그냥 선수들이 스스로 분위기 전환을 위해 무리한 압박을 이어나간건지, 아니면 어린 팀이라 멘탈이 나가서 흔들린 건지, 또는 순간적인 집중력 저하가 있었던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이것 자체가 팀단위 or 전술 측면에서 앞으로 아스날이 매번 고쳐나가야 할 고질적인 약점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4:0이란 스코어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4:0은 좀 심한 거 아니야? 또는 그 정도로 대패했어? 라는 식의 자조적인 반응까지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게 제 사견입니다.

     

    4. 

    개인적으로는 램스데일과 마갈량은 여전히 그 와중에도 좋은 실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연결고리로는 라카제트가 제 몫을 해줬고요. 이 셋 만큼은 확실히 이번 시즌 아스날의 안정적인 핵심 자원으로서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 외의 선수들은 오바메양, 파티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어린 선수들이다 보니 강팀 원정과 그 분위기에 주눅 들어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많이 펼쳐 보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특히 누노는 일전에 양발 사용 가능함에 따라 가져올 수 있는 이점이 많다고 설명해드렸는데, 오늘 경기에서는 그 이점을 사용할 상황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사용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주발로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습니다. 기존에도 드리블을 반박자 더 치면서 동료들에게로의 패스 타이밍이 반박자 어긋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요. 이런 부분은 피드백을 통해 고쳐나가야 할 테고, 그 이후의 미스들은 아무래도 전형적인 멘탈 터진 어린 선수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경험 부족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나름 파워풀한 피지컬과 체력을 바탕으로 살라를 상대로 전반까지는 어느 정도 제어에 성공했다고도 볼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네요. 너무 주눅 들지 말고, 티어니와 주전 경쟁을 하면서 성장하길 바랍니다.

    반면, 삼비의 경우에는 경기를 치를수록 약점이 점점 더 많이 드러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압박 강도가 거세질수록, 판단이 느려지고, 쓸데없는 터치 횟수가 늘어지면서 턴오버가 생성되는데요. 상대적 약팀을 상대로는 크게 부각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강팀을 상대로는 골치 아픈 이슈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개인적으로 파티가 이런 부분을 전혀 커버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오늘도 삼비의 실수가 많긴 했지만, 이런 강팀을 상대로 할 때는 파티가 스스로 좀 더 빌드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삼비 같은 선수의 약점을 가려줄 필요가 있는데, 되려 본인이 자주 내려가는 상대 티아고에 이끌려 포지셔닝 미스를 범한 경우도 몇 번 있었습니다. 부상 복귀 전이라 좀 더 지켜봐야겠으나, 냉정하게 아스날에 온 이후의 파티는 기대치에 걸맞는 활약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종합적으로는 오바메양의 리더쉽 부재도 아쉬웠습니다. 경기장 밖에서야 친근한 이미지와 라커룸 리더로서 주장의 역할을 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경기장 내에서는 크게 리더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오히려 팀을 다그치거나 다독이는 것은 램스데일이 돋보입니다.

     

    5. 

    마지막으로 아르테타가 준비해온 기본 틀(비록 전반에만 적용됐지만..)과 뚝심 있는 선발 라인업 자체는 괜찮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리버풀 원정임을 감안하면, 5백으로 변환하거나, 완전한 선수비 후역습 구조의 틀을 짜고 와도 이상하지 않을진대, 오늘의 경우 나름 10경기 무패로 좋은 모습을 보인 구성원 그대로, 기존의 전술 틀을 유지하면서 나온 배짱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살라, 아놀드를 견제하기 위한 살짝의 변칙적인 아이디어도 썩 좋았습니다만, 너무 심한 좌우 불균형이 초래되는 것에 대한 2차적인 대비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흠이었고, 위에서 지적했듯이, 플랜A와 플랜B 사이에서 약간 애매한 방향성을 가졌던 것 역시 문제점으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삼비에 대한 교체 타이밍도 살짝 느렸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하프 타임 교체를 했어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았을 듯)

    한편, 경기 도중 리버풀의 거친 플레이에 대해 무려 클롭 감독과 맞불을 놓으며 항의하는 장면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벵거 시절부터 아스날이란 팀이, 선수부터 감독까지, 너무 무르고 신사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감독을 포함해 팀 자체가 이제는 그런 이미지를 벗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아르테타의 그런 모습이 내심 반가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에 대한 경기 후 인터뷰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는 그의 팀을 옹호했다, 나는 나의 팀을 옹호했다, 그게 다다. 문제가 될만한 건 없었다. 그렇다. 나는 경기후에 클롭과 얘기했다. 그의 승리를 축하해줬다. 그와의 언쟁은 피치 위에 두고 왔다."

     

    어쨌든 아르테타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경기의 결과보다, 이 경기 이후에 어떻게 어린 선수들의 멘탈을 다시금 바로잡고, 좋았던 분위기를 되살려낼 수 있는지 여부라고 봅니다. 오늘은 질만한 팀한테 졌습니다.

    대신 앞으로의 일정에서 이길만한 팀들을 확실하게 이기는 것이 유럽 대항전 진출에 있어서는 훨씬 중요한 요인일 겁니다. 본인의 장점에 속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통해 대패 이후 확실한 동기부여와 함께, 주전 경쟁 시스템을 도입해서 삼비, 누노, 나일스, 티어니 같은 선수들이 모두 긴장감을 유지한 채로 시즌을 꾸준히 치르는 것이 관건일 듯 싶습니다. 이제 토트넘의 누누 감독뿐만 아니라, 맨유의 솔샤르 감독까지도 경질에 가까워졌는데, 그들을 본보기 삼아 비슷한 길을 걷지 않도록 분전해주길 희망합니다.

    그리고 이번 시즌 아스날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꼽히는 스트라이커나 트랜지션 국면에서의 완성도 부족, 그리고 쟈카 부상으로 인한 주전급 파티 짝의 부재는 겨울 이적시장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내부적으로 해결하기에는 아무래도 아스날이나 아르테타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도 짧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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