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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단 경기 리뷰 (vs 사우스햄튼)
    Arsenal/Talk 2021. 12. 1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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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대했던 대로 오랜만에 분위기를 반전시킬만한 시원한 승리가 나왔습니다. 2경기 모두 질만한 경기가 아니었음에도 다소 복잡한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오히려 스스로를 곤경에 빠뜨렸던 아르테타 감독은 이번 경기에서 절치부심하며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특히 제가 에버튼 리뷰 글에서 지적했던 (1)과 (2) 사이 어딘가의 어설픈 선택이 사라지고, 오바가 예상치 못한 징계로 인해 완전히 결장하자, 라카를 중심으로 해서 완전히 새로운 판을 짜고 나왔습니다. 즉 (2)번을 택한 것이죠. 

    지난 리뷰에서 제가 작성했던 부분을 다시 인용해볼게요.


    그러나 맨유 전에 이은 에버튼 전에서도 아르테타는 또 한 번 (1)도 아니고, (2)도 아닌 어설픈 선택을 합니다. 라카제트가 오바메양 대신 나왔으니 (2)번처럼 새로운 틀의 플랜B를 작동한 게 아니냐고요? 전혀요.

    정말 라카제트를 톱으로 하여 틀 자체를 새로 짤 의도였다면, 외데고르와 같은 동선을 가져가거나 라카가 왼쪽으로 스위칭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차라리 정말 제로톱으로 활용되면서 포메이션 자체도 433을 기반으로 다시 구성되었겠죠.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즉, 사실상 겉이 바뀐 것에 비해 전혀 새로운 판 짜기가 아닙니다. 새로운 판 짜기라는 건, 아까 비유로 따지면 시계를 또 하나 만드는 셈인데, 아르테타는 현재의 선수단으로 예비 시계를 전혀 만들어놓지 않은 듯합니다. 단기간에 새로운 예비 시계를 새로 만들어내 작동시킬 수 있을만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자체도 의심되고요.


    허나, 오늘 경기로 아르테타는 저의 의심을 보기 좋게 걷어차버렸습니다. 1~2경기라는 짧은 시간에 새로운 예비 시계를 새로 만들어내 작동하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는 뜻이죠. (물론 좀 더 봐야겠지만 아무리 약팀 상대더라도 1경기만에 이 정도의 변화된 틀을 가지고 와서 대승을 거두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많은 구너분들이 눈치 채셨겠지만, 이번 경기는 기존의 아르테타의 틀과는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아니, 아예 다르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즉, 언급했던 대로 아르테타가 라카 톱을 기반으로 해서, 틀 자체를 433으로 바꾸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오늘 경기 역시 따로 분석해야 할 부분이 꽤 많으므로, 경기 분석 칼럼과 선수 간단 평가를 좀 나누어 글을 작성하고자 해요.

    상세한 건 함께 올라갈 경기 분석 칼럼에서 다루겠지만, 오늘 경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했던 건 아닙니다. 특히 초반 20분 정도에는 헤매는 모습도 있었죠. 반면, 후반전의 모습은 아마 올 시즌 모든 경기를 통틀어 가장 괜찮았던 45분으로 꼽혀도 손색이 없을만큼 좋은 모습이었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다음 경기가 이번 시즌 향방을 결정지을 수도 있을만큼 중요한 웨스트햄과의 경기이므로, 이 기세를 꼭 이어나가 홈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겠죠? 부디 새로운 틀을 이어나가 사실승 승점 6점 경기급의 중요한 무대에서 환하게 웃는 감독, 선수들을 보고 싶네요. (꼭 중요한 길목에서 미끄러진다는 최근 아스날에 대한 선입견들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

    안 좋았던 전반 초반 20분 가량의 퍼포먼스를 잠깐 살펴보면, 개인적으로 전술 상의 문제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새로운 틀에 적응하는 3선 조합 (파티-쟈카)에서 포지셔닝 미스가 있었고, 기존에 아스날의 약점 중 하나인 트랜지션 수→공 전환에서 외데고르 같은 연결고리 자원들의 개인 패스 정확도가 떨어진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새로운 틀을 적응함에 있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과정이므로,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 과정을 통해 에버튼전 같은 경기 자체를 내준 것은 매우 안타깝습니다)

    특히 쟈카는 이번 경기에서 433의 메짤라에 해당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선수가 가진 단점을 자연스레 노출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쟈카는 그만큼 턴이 느리고, 동작이 둔하기 때문에 압박 강도가 강해지는 앞쪽으로 나갈수록 턴오버가 많아집니다. 그래서 아르테타는 오자마자 쟈카를 가짜 3백 형태로까지 내려쓰고, 볼을 받을 때 등지고 받는 게 아니라, 앞을 보면서 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했죠. 그러나 오늘 경기에서는 메짤라 역할을 맡으면서 평균 포지셔닝도 기존 아르테타 체제에서의 평균보다 더 높게 형성되었고, 그만큼 몸이 앞으로 열린 상태가 아니라, 등지고 볼을 받는 상황도 많이 나왔습니다. 이건 433에서 쟈카를 쓰려면 동반될 수밖에 없는 문제점입니다. 이를 강화하기 위해 더 나은 메짤라 3선을 원했던 아르테타이고요. (늘 말해왔지만, 실질적인 아르테타의 이상적인 그림은 4231보다는 433에 더 가깝습니다)

    물론 쟈카의 부상 복귀 시점도 고려해야만 합니다. 올해 출장이 불가할 것으로 여겨지던 장기 부상으로부터 조기 복귀해서, 폼을 제대로 올리지도 못한 채로, 지난 경기 90분 풀타임을 소화했고, 게다가 2번째 경기에서는 본인이 잘 안 뛰던 메짤라 역할이라는 새로운 롤까지 담당하게 된 격이니, 경기 중 부침을 겪을만한 환경이었다는 것이죠. 게다가 경기 분석 칼럼에서 따로 살펴보겠지만, 이 경기에서 쟈카가 기여한 바가 은근히 많습니다. 오히려 많은 분들이 쟈카의 미스에만 집중해서, 이런 부분들을 놓쳤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다음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한편, 초반에 소튼의 전방 압박 강도가 나름 강했던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그런 강도의 압박을 초반에 끌어쓰는만큼 리스크도 존재하고, 실제로 아스날이 한 번 풀어내자마자 선제골은 물론, 경기 양상 자체가 완전히 뒤바뀌었지요. 애초에 상대적 약팀으로 평가받는 팀들은 이런 식의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형태의 도박수를 놓는 게 일반적이니, 이에 대한 대처가 과정상으로는 약간 아쉬웠어도, 결과적으로 실점하지 않고 뚫어내면서 기세를 반전시킨 것만으로도, 나름 상대의 도박수에 말리지 않고 최소한의 제 역할을 선수들이 수행해 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3.

    선수 평가로 넘어가 볼게요. 오늘은 후방 선수들부터 보겠습니다.

    비록 경기 초반 꽤 많은 위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경기로 볼 때, 후방 선수들의 활약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항상 램스데일 평가는 짧게 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는데, 그만큼 따로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이 언제나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주는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선방이든, 킥이든, 빌드업이든 모든 면에서 완벽했죠? 조금은 주제넘은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올 시즌의 램스데일을 현재까지 리그 베스트에 감히 올려놓아도 무방할 정도라고 보고 있습니다. (멘디가 워낙 잘하긴 하지만, 그에 꿀리지 않을 만한 선방 능력과 더불어, 멘디가 부족한 빌드업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더 높게 평가합니다) 팀 실점이 너무 많지 않느냐는 반론도 충분히 일리 있겠습니다만, 사실 골키퍼의 개인 능력이 더 돋보일 수 있는 환경이 보통 이런 환경이기도 하지요. 여하튼 램스데일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골키퍼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압박에 침착하게 대응한다는 점입니다. 다른 아스날 선수들은 압박을 받으면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한데, 오히려 골키퍼가 덜 그렇다는 게 참 대단하기도 하고, 웃프기도 한 실정입니다. 또 하나는 킥이죠? 마르티넬리가 아쉽게 찬스를 살리지는 못했지만, 단 하나의 패스로 공격수에게 1대1 기회를 제공할만한 킥을 가진 골키퍼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선방 능력 역시 그대로 빛났습니다. 특히 체흐가 그랬듯, 선방 시 볼을 쳐내는 방향이 좋습니다. 필요할 땐 결을 따라 흘려보내면서 터치라인 바깥으로 내보내기도 하고, 어떨 땐 세컨볼 기회를 주지 않고 바로 자세를 다잡아 볼을 소유할 수 있게끔 본인 근처로 공을 쳐내기도 합니다. 이런 판단과 스킬이 매우 훌륭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다음으로 꾸준함을 보이는 선수는 마갈량이죠? 특히 마갈량의 경우에는 튀어나가는 화이트를 커버하는 역할과 더불어, 빌드업, 세트피스의 존재감까지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선수를 대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카드 관리를 위한 교체에서 홀딩이 대신 나왔지만, 마갈량의 안정감에는 비할 바가 되지 못했지요. (그러나 홀딩도 최근 훈련에서 좋은 폼을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경기에서 종종 패스미스가 나오곤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금방 폼을 되찾을 줄 아는 선수고, 다른 것보다도 몸싸움 경합에서 리그에 완전히 적응했다고 평가하고 싶어요. 즉, 프리미어리그에서 딱 허용되는 적정 허용치로 손을 잘 사용하다가도, 허용하지 않는 지점을 넘었다 싶으면 손을 바로 떼 버리는, 이런 식의 영리함을 기반으로 해서 1대1 상황에서도 돌파를 허용하지 않고, 웬만한 경합에서 이기거나, 최소한 파울을 얻어내는 수확을 얻어내고 있습니다. 헤딩을 통한 득점력 역시 큰 장점입니다. 셀레브레이션도 맛깔나서 좋고요 ㅎㅎ 그나저나 이제 아빠가 되는 것 같던데 정말 축하할 일입니다.

    화이트는 역시 이런 경기에서 더 안정감이 있습니다. 트랜지션 상황이 많아지는 개싸움이 되거나, 혹은 완전히 밀려서 깊은 곳에서 한정적인 역할을 맡으며 전통적인 수비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장점이 발현되기 어렵거든요. 오늘처럼 경기 주도권을 확실히 잡고, 말그대로 경기를 아스날이 통제하는 상황에서는, 화이트의 장점이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특유의 인터셉트 능력과 훌륭한 발밑으로 인해 아스날이 경기를 잘 통제할 수 있도록 부스터 역할을 해주는 것이지요.

    토미야스 역시 오늘 숨은 주역 중 하나라는 생각입니다. 딱 언성히어로의 느낌인데요. 아스날이 사우스햄튼의 압박을 풀어낼 수 있었던 건, 외데고르의 역할도 컸지만, 일단 토미야스의 양발 사용 능력이 기점이 되었다는 의견입니다. 보면 볼수록 누노보다도 더 양발을 잘 쓰는 선수고, 기본적으로 발밑 터치도 안정적이며, 자신의 약발(왼발)을 언제 써야 효과적인지를 잘 인지하고 있는 똑똑한 선수입니다. 공중볼은 팀 내 1위급으로 따내고 있고, 화이트가 낮은 지역에서의 수비에 상대적으로 약점을 보이는 반면, 토미야스는 낮은 지역에서도 꽤 괜찮은 수비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공격으로의 지원 역시 날이 가면 갈수록 본인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성실합니다. 별 거 아닌 미끼 움직임이나 언더래핑을 불평 없이 꾸준하게 해 주면서 사카를 공격적으로 전폭 지원하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사카가 스스로 풀어내기에 더 적합한 환경을 조성해주고 있습니다. 외데고르와의 동선 문제도 이번 경기에서는 아르테타가 잘 조율한 모습입니다.(이것도 자세한 건 경기 분석 칼럼에서)

    티어니는 오늘 433이 되면서 평소와는 다른 역할을 맡았습니다. 즉 기존에는 마무리 국면에서 티어니가 엄청 올라가면서 비대칭 형태의 235가 만들어졌던 반면, 오늘은 티어니와 토미야스가 인버티드 풀백처럼 중앙으로 모여들고, 원볼란치 파티를 도와주면서 3 미들을 형성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전개 국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과는 달리 너무 과한 오버래핑을 하지 않고, 메짤라 역할에서 단점을 보일 수밖에 없는 쟈카를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지원해주는 느낌에 가까웠죠. 대신 측면에서 마르티넬리가 더 공을 잡는 시간이 길어졌고, 티어니가 뒷받침해주는 동안에 쟈카가 올라갈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이것도 자세한 건 경기 분석 칼럼에서) 워낙 크로스의 질 자체가 좋기 때문에 굳이 터치라인 근방까지 올라가서 크로스하지 않더라도, 좋은 크로스를 공급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게다가 너무 올라가지 않으니 체력적인 부담도 덜해서 수비에서도 아스날이 20분 이후로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도록 기여했습니다. 주발 의존도가 높은 편이긴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는 오른발을 쓰는 장면도 종종 있었고요. 예전에 티어니, 누노를 다룬 글에서, 티어니가 복귀한다면, 이전보다 하프스페이스에 서는 일이 많아질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오늘이 딱 그랬습니다.

     

     

    4.

    전방 공격 자원들도 오늘 전체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마르티넬리의 경우에는 지난 경기에서 너무 잦은 스위칭으로 인해, 상대에게 교란을 일으키기보다는, 오히려 아군에게 교란을 일으킬 정도로 비효율적인 움직임을 보여줬었는데요. 오늘 경기에서는 433의 LW 역할로서 훨씬 정돈된 동선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433에서 윙어들이 으레 그렇듯, 드리블할 공간이나 타이밍이 평소보다 많이 주어졌는데, 그 점에서도 특유의 파이팅을 보여주면서 아주 날카롭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볼을 뺏기지 않고, 뺏기더라도 다시 뺏어오는 형태로 팀에 기여했습니다. 그러다가도 마무리 국면에 이르거나, 상대 페널티 박스 안에서는 라카가 공급하지 못하는 역할도 겸비했는데요. 박스 안에서 라카보다 더 센터백과 자주 비벼주고, 마무리 국면에서 상대 포백을 뒤로 물리게끔 밀어내는 롤을 라카 대신 잘 소화해주었습니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막무가내로 스위칭해대는 게 아니라, 필요한 국면에서, 필요한 역할만 딱 보완해주는, 이런 식의 배분이 제가 원하던 그림이었지요. 페페가 나온 이후부터는 잠시나마 고정적인 톱으로도 활용되었습니다. 한편, 중앙으로 파고드는 드리블 이후, 감아차기로 골대를 맞힌 장면을 비롯해 기존의 아스날 선수들이 부족했던 박스 바깥에서의 자신 있는 슈팅 시도를 제공해준다면, 로우가 복귀하더라도 마르티넬리는 꾸준히 기회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외데고르는 보면 볼수록 공미보다는 메짤라에 적합한 선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전술상으로는 쟈카 옆에서는 오른쪽 메짤라스럽게 플레이했는데, 의외로 패스가 부정확한 경우가 잦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하드워커 기질을 활용하기에 이 역할이 더 잘 맞는 옷처럼 느껴졌습니다. 주발과 몇몇 이미지 때문에 외질과 비슷하다는 말도 많이 듣는 편인데, 실제 플레이 스타일은 다른 점이 꽤 많습니다. 수비 가담도 좋고 압박도 열심히 하는 편이죠. 또 어린 만큼 발전하는 부분도 있는데요. 박스 침투가 시간이 지날수록 향상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최근에 골을 많이 기록해서가 아니라, 사카와의 오른쪽 편대 호흡을 맞춰나감에 있어 본인에게 부족했던 부분을 인지하고, 교정하려 노력하는 것 같아 보기 좋았습니다. 측면으로 잘 안 빠지려 했던 중앙 지향적인 움직임도 상당히 많이 고쳐져서, 이제는 토미야스보다도 더 자주 측면으로 움직이고요. 태도의 측면에서도 영향력이 있는데요. 저번 에버튼전이 끝나고 인터뷰에서 어필했듯, 팀의 위닝 멘탈리티나 리더십이 부족함을 꼬집고, 본인이 앞장서서 열정을 보여주는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모범이 되고, 팀에게 큰 소리로 이를 촉구, 격려하는 데다가 연속골까지 기록 중이니... 이 정도면 기존에 외데고르에게 기대했던 유형(사실 기대한 스타일은 킬패스 뿌려주는 공미)은 아닐지라도, 조금은 다른 유형(하드워커로 보답하는 박투박 스타일)으로서 아스날에 잘 기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여전히 주발의 한계라든가, 그로 인한 밸런스와 패스 미스 등의 문제점은 보이지만, 어리고 똑똑한 선수인만큼 아르테타가 잘 지도해주길 바랍니다.

    라카제트는 지난 경기에 비해 확연히 달라진 선수 중 하나입니다. 선수 스타일 자체가 이제는 톱보다는 공미에 가까워질 정도로, 9.5번을 넘어선 느낌이 든다고 했었는데요. 오늘 경기에서는 본인을 중심으로 팀 자체가 틀을 433으로 바꾸다보니, 오바메양보다 훨씬 훌륭한 볼키핑 능력과 좌우 분배 능력을 뽐내기에 훨씬 적합한 판이 벌어졌습니다. 또한 과도하게 밑으로 내려와 머무르는 대신, 간결하게 필요할 때만 잠시 내려와 주고, 최소한의 중앙 고정을 이어나가는 모습도 좋았습니다. 물론 상대 센터백들과 직접 몸으로 부대끼면서 포백 라인을 밀어내는 역할은 마르티넬리가 더 자주 담당했지만, 제로톱 형태로서 센터백이 계속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정도의 적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아스날의 좌우 전환이 라카를 거치게 되고, 이를 통해 좌우 전환 속도가 빨라져 상대 수비를 횡적으로 흔드는데 용이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제가 바라던 라카 톱의 모습도 이런 느낌이었고요. 다만, 여전히 슈팅하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슈팅의 질이 좋음에도, 원터치슛보다는 완벽한 찬스를 만들려는 경향성이 짙다는 톱으로서의 단점은 있습니다. 선제골처럼 원터치로 슈팅 타이밍을 빠르게 가져간다면 훨씬 기대 득점이 올라갈만한 유형인데, 이건 라카가 오고 거의 4~5년째 고쳐지지 않는 문제인 만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카는 하던대로 잘 해준 편이죠? 늘상 말하지만 흔히 말하는 아이솔레이션 공격을 믿고 맡길만한 자원이 현재로서는 아스날에 사카밖에 없기 때문에 상당히 유니크한 자원입니다. 우측 편대의 로테이션이 잘 돌아갈수록 사카에게는 공격을 펼치기에 좋은 환경이 되고, 이번 경기에서는 외데고르와 토미야스가 그런 측면에서 잘 해준 편입니다. 조금 고립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우측에 넓게 포지셔닝하는데, 이건 전술적인 부분으로써 명확한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이고요. 만약 앞으로도 오늘처럼 433 형태를 기반으로 한다면, 이런 고립 문제는 좀 더 나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래도 433에서 사카가 박스 근처 일대일 패스를 활용하기도 더 용이하고, 라카 제로톱이 유지된다면 횡으로 들어오다가 찔러주는 패스보다는 본인이 옆, 뒤로 간결히 넘겨주고 직접 공간 침투하는 움직임이 더 많아질 겁니다. 실제로도 그런 장면이 몇 번 나왔고요. 오늘 어시에 이어 골대 맞힌 장면에서 골까지 기록했다면, 거친 팀들을 상대로 집중 견제를 당하면서 부상 위험은 물론, 컨디션에 살짝 하락감이 있었던 사카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을 거라 생각했기에, 득점에 실패한 게 가장 아쉽습니다.

     

     

    5. 

    쟈카와 파티 3선은 경기 분석 칼럼에서 자연스럽게 다뤄지기도 하겠고, 둘 다 433스러운 위치에서의 역할은 익숙지 않은 만큼, 장단을 모두 보여준 경기였습니다. 따라서 상세한 평가는 보류하고요.

    한편, 로우가 경미하지만 부상으로 결장한 상황에서, 로우를 투입할 필요없이 경기를 깔끔하게 끝냈다는 점, 선제골 이후에 많은 이들의 우려와는 달리, 스스로 내려앉지 않고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말한 것처럼 2번째 골, 3번째 골을 향해 달려 나갔다는 점에서 이번 경기는 참으로 고무적입니다. 

    로우가 돌아오더라도 지금의 433 기반 235 변형 틀을 이어나갈지 기대가 되는데요. 로우는 현재 마르티넬리 자리는 물론이고, 사실 쟈카 자리까지도 소화할 수 있는 선수기 때문에, 과연 웨스트햄전에서는 아르테타가 어떤 선발 라인업을 들고 올지 궁금합니다. 

    여하튼 조금은 어이 없었던 2경기 연속 패배를 딛고, 새로운 판을 다시금 짜 온 아르테타 감독을 필두로 하여 시원한 대승을 거두고, 매우 중요한 웨스트햄전에 앞서 분위기 반전을 이끌어낸데 성공한 아스날이, 기존의 선입견들을 벗겨내서 중요한 길목에서 미끄러지지 않을 수 있을지,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었는데요.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주장이라는 오바메양이 다른 것도 아니고 규율 위반으로 코로나 프로토콜은 물론, 징계 결장까지 하게 된 점은 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심지어 자화자찬 식으로 자신이 최고의 주장이라는 인터뷰를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말이지요. 오바메양은 아스날 이전에도 도르트문트 시절에도 몇 번 훈련 불참이나 지각으로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전적이 있던 만큼, 이것이 아르테타의 선수단 관리 능력 부족이라고까지 생각지는 않고요.

    뿐만 아니라 오바메양 없이도 나머지 선수들끼리 똘똘 뭉쳐서 대승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겠습니다. 이건 선수단 측면에서도 오바 같은 베테랑에 굳이 의존하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며, 전술적으로도, 오바메양이 해주는 역할이 다양하긴 했지만, 의존도를 줄이고, 잘 정돈된 플랜 B를 보유할 수 있다는 걸 뜻하므로, 앞으로의 마라톤처럼 긴 시즌을 소화함에 있어 또 하나의 무기가 장착하게 된 셈이죠.

    에이징 커브로 인한 자연스러운 폼 하락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이런 식으로 별개의 엉뚱한 일로 아스날 팬들을 실망시키는 일은 비단 오바메양뿐만이 아니라, 더 이상 아스날 선수들로부터 보고 싶지가 않네요. 특히 주장들에게는 더더욱이요. 묵묵히 응원해온 오래된 아스날 팬일수록, 지난 주장들의 행동에 상처 받은 케이스가 이미 너무 많습니다. 부디 정신 차리고, 오바메양도 남은 아스날에서의 기간 동안 실력을 되찾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의 프로의식은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떠났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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