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단 경기 리뷰 (vs 에버튼)Arsenal/Talk 2021. 12. 7. 21:47반응형
1.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
경기 감상하면서 든 생각입니다. 오바메양이 톱에서 부족했던 것은 쉬운 찬스에서의 결정력 부족이지, 오바메양 때문에 판 자체가 안 돌아가거나, 찬스조차 만들지 못할 정도로 팀 전체의 경기력이 최악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10경기 무패행진을 이어나갔을 리가 없죠. 그냥 오바메양이라는 구성원 하나가 스트라이커로서 결정력이 유독 하락하면서, 쉽게 이길걸, 어렵게 이긴다는 단점 정도가 따랐을 뿐이지요.
이 단점을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아보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만큼 아스날에 오바메양의 대체 자원이 없는 것은 명확하니까요. 허나, 어려움은 별론, 결코 복잡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르테타는 문제를 되려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포지셔널 플레이를 다루는 감독들의 전술은 매우 예민하고 섬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이론적으로는 좋아보여도 실질적 구현을 성공적으로 이뤄내는데 상당한 시간을 소요하고, 심지어 시간을 소요한다고 해서 무조건 모든 선수들이 다 적응하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11명의 선발 베스트 라인업으로 괜찮은 포지셔널 플레이를 이뤄내는 것만으로도 꽤 큰 수확입니다. 그만큼 하나하나의 조그만 변화에도 민감하고, 특히 후보와 선발 사이의 갭이 클 수밖에 없죠.
비유를 하나 들어보자면, 이들의 플레이 방식과 전술은 마치 기계식 시계와도 같습니다. 선수 하나하나가 태엽장치 또는 톱니바퀴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11개의 톱니바퀴들이 자신의 역할을 하면서 동료들과 잘 맞물리고, 이런 요소요소들이 한꺼번에 진행되어야 시계가 작동하는 셈이죠. 올 시즌 아르테타는 10경기 무패를 달리는 동안 어느 정도 선발 베스트 라인업을 통해 시계가 작동하게끔 만드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오바메양이 문제였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비유해보자면 시계를 작동시키는데 필요한 톱니바퀴 중 하나가 그냥 무뎌진 정도의 문제였습니다. 이를테면 오바메양 톱니바퀴가 무뎌지면서, 전체적으로 시계가 느려지는 정도의 이슈가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시계가 작동은 하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요? 보통은 대체 톱니바퀴를 찾겠죠. 허나 당장 대체품이 없다면, 대체 톱니바퀴를 살 수 있을 때까지는 그냥 쓰면서 대신 윤활유를 발라 무뎌진 톱니바퀴를 보완하는 정도의 해결책을 찾을 겁니다.
그러나 아르테타의 해결 방식은 매우 특이합니다. 맨유전에서 보여준 해결책은 오바메양 톱니바퀴가 무뎌진 걸 보완하기 위해, 옆에 있는 로우 톱니바퀴를 2~3배 빠르게 돌려버린 셈입니다. 그러면서 무뎌진 오바메양 톱니바퀴가 강제로 본인의 속도를 찾게끔 의도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방식은 오히려 화를 자초할 뿐이겠죠?
에버튼전에서 보여준 해결책은 더 답답합니다. 이번에는 오바메양 톱니바퀴와 크기 자체가 다른 라카제트 톱니바퀴를 대신 끼우려 합니다. 크기가 다르므로 기존 전술에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번엔 잘 작동하던 옆 톱니바퀴까지 같이 갈아엎어버리죠. 이건 하나의 장치로서 작동하던 나머지 9개의 톱니바퀴들까지 모조리 망쳐버리는 셈이죠. 이제는 시계가 조금 느리게 작동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예 작동하지를 않습니다. 즉 포지셔널 플레이가 초기화된 겁니다.
2.
지난 맨유전을 보고 저는 아르테타가 기조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당시 2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한다고 촉구했었는데요. 그 워딩을 이 글에도 정확히 옮겨보겠습니다.
(1) 오바 톱을 쓸 거면 그냥 이전처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믿고 중앙에 짱박아두면서 좌측, 우측 편대를 각각 살려 어떻게든 오바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낫다는 말입니다. 그 기회를 오바가 놓치든, 득점에 성공하든, 결과는 그다음 문제입니다.
(2) 그게 아니고 오바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면, 동료들에게 오바가 짊어져야 할 짐을 나눠주면서 변형을 시도할게 아니라, 아예 오바를 빼고 새로운 틀의 플랜 B를 가동하는 게 낫습니다. (차라리 맨시티처럼 아예 스트라이커 없이 제로톱을 시도하든가요)
오늘 맨유 전에서의 아르테타의 전술은 정말 이도 저도 아닙니다. (1)과 (2)의 어설픈 혼합이었단 뜻입니다. 이도 저도 아닌 전술이 아래와 같은 흐름으로 나비효과를 일으키면서 악순환이 계속되고, 알아서 자멸하는 구도가 생성됩니다.
그러나 맨유 전에 이은 에버튼 전에서도 아르테타는 또 한 번 (1)도 아니고, (2)도 아닌 어설픈 선택을 합니다. 라카제트가 오바메양 대신 나왔으니 (2)번처럼 새로운 틀의 플랜B를 작동한 게 아니냐고요? 전혀요.
정말 라카제트를 톱으로 하여 틀 자체를 새로 짤 의도였다면, 외데고르와 같은 동선을 가져가거나 라카가 왼쪽으로 스위칭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차라리 정말 제로톱으로 활용되면서 포메이션 자체도 433을 기반으로 다시 구성되었겠죠.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즉, 사실상 겉이 바뀐 것에 비해 전혀 새로운 판 짜기가 아닙니다. 새로운 판 짜기라는 건, 아까 비유로 따지면 시계를 또 하나 만드는 셈인데, 아르테타는 현재의 선수단으로 예비 시계를 전혀 만들어놓지 않은 듯합니다. 단기간에 새로운 예비 시계를 새로 만들어내 작동시킬 수 있을만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자체도 의심되고요.결국 아르테타가 할 수 있는 건 기존에 겨우 잘 만들어놓은 시계를 어떻게든 활용하는 겁니다. 결국은 (1)에 가깝죠. 이걸 만드는데도 2년이 걸렸으니까요. 현재 선수단과 아르테타의 한계 모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꼭 오바가 아니더라도, 오바가 하던 역할 (중앙에 고정형으로 있으면서, 센터백을 뒤로 밀어주고, 피닝시키며, 좌우 편대가 활동할 수 있도록 센트럴 스페이스를 점유해주는 것)은 유지했어야 합니다. 적어도 오바 톱니바퀴와 크기가 맞는 톱니바퀴로 갈아 끼워야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오늘 아르테타는 또 이도 저도 아니었습니다. (1)번처럼 라카에게 오바의 역할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오바를 다른 선수로 대체한게 아니라, 그냥 오바가 담당하던 중앙 고정형 스트라이커 역할을 삭제시켰습니다. 중앙 고정형 역할이 사라지니, 좌우 편대가 공격을 전개해도 방점을 찍어줄 사람 자체가 없게 됩니다. 그렇다고 확실히 (2)번처럼 새로운 판을 짜고, 라카가 잘할 수 있는 특유의 횡적인 넓은 움직임을 장려한 것도 아닙니다. 오른쪽은 가보지도 못하고, 마르티넬리 대체톱과의 스위칭을 통해 어설프게 좌측으로만 빠졌죠. 이런 스위칭으로 대체톱을 가져간다는 것 자체가 아르테타 스스로 본인이 새로운 판을 짜는 게 아니라,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기존 (1)번과 비슷하게 짜 맞추려고 시도했다는 방증입니다. 라카를 쓰면서 새롭게 바꾼 척 하지만, 사실은 마르티넬리가 스위칭해 오바 역할을 대신해주길 바라는 것이죠. 그러나 그 스위칭이 자연스럽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경기 내내 중간중간 둘이 겹치면서 효과는커녕 역효과가 냈습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마르티넬리를 톱으로 당당히 내세우면서 오바가 하던 역할시키고, 라카를 대놓고 LW에 쓰면서 로우 역할시키는 게 낫죠. 뭐하러 어설프게 바꿔댑니까. 전술적 난이도도 그렇고 현장에서 스위칭을 언제 적절하게 해야 할지 판단하는 것은 매우 난도가 높은 일입니다.
스위칭이 얼마나 역효과가 났는지는 그냥 경기 내적으로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도 없이, 통계만으로도 간단히 입증됩니다. 두 번째 그림과 같이 상대 진영 센트럴 스페이스가 그냥 비워진 채로 경기를 치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러니 당연히 첫 번째 그림처럼 중앙으로의 전개%가 거의 올 시즌 최하치로 떨어집니다.
오바메양 대신 라카제트를 중앙에 쓰고 중앙 전개 퍼센티지가 낮아진다니... 중앙에서 오바의 적은 영향력 및 결정력 부족이라는 흠을 고치기 위해 라카를 투입했다기엔, 오히려 문제를 키운 셈이죠. 딱, 호미로 막을걸 가래로 막은 겁니다.
이렇듯, 오바 단점을 커버하기 위한 아르테타의 노력들은 지난 맨유전도 그렇고, 이번 에버튼 전도 그렇고, 오히려 더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이제는 쉽게 이길걸, 어렵게 이긴다조차도 아니고, 그냥 승점 자체를 따질 못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최근 2경기 모두, 선제골을 넣었음에도 역전당했습니다. 이럴 거면 어렵게라도 이기거나, 찬스에 비해 골 놓치더라도 지배적인 게임 하면서 아쉽게 비기는 게 낫죠? 뭐하러 고치려다가 승점을 1점도 획득하지 못하는 게임을 하나요.
결론적으로 (2)번처럼 판을 갈아엎을만한 용기나 패기가 없다면, 그냥 (1)번을 이어나가길 바랍니다. 오바 기용으로 욕먹더라도, 겨울 이적시장 전까지는 믿음의 축구를 하든가요. 그게 나아 보입니다. 아르테타와 아스날은 더 이상 과감한 결단력 없이 이도 저도 아닌 선택으로 승점을 날려먹을 여유가 없는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감독을 경질하고 변화를 꾀한 맨유와 토트넘이 턱밑까지 추격은 물론, 역전해버린 상황이니까요.
3.
경기 내적으로 몇몇 장면도 살펴볼게요.
(1) 톱 부재 - 센트럴 스페이스 미점유
경기를 보면 라카제트와 마르티넬리가 스위칭을 적절한 시기에 하지 못하고, 오히려 동선이 겹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아예 톱 자체가 없어지는 빈도가 매우 많습니다. 위 사진도 그 많은 예시 중 하나의 장면이고요.
라카제트와 마르티넬리 모두 묶여서 좌측 하프 스페이스라는 한 공간에 있죠. 스위칭으로 인해 이도 저도 아니게 된 경우입니다. 즉 LW 하프 스페이스 / CF 센트럴 스페이스 점유 같은, 기본적인 공간 분배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덕분에 흰색으로 표현된 센트럴 스페이스 공간은 아무도 점유하지 않게 됩니다.
트랜지션 장면이긴 하지만, 또 톱이 없습니다. 없다면 다른 선수들이 대신이라도 들어가 센트럴 스페이스를 점유하거나, 상대 센터백이 적절한 수비 위치로 자리잡지 못하도록 최소한 방해라도 해야 하는데 그 누구도 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현재 아스날 선수들의 대체 톱이나 제로 톱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얕다는 뜻입니다. 가장 톱에 근접한 위치에 있는 게 쟈카라는건 실소가 나올 만큼 웃긴 상황입니다.
후방 빌드업 & 전개 국면에서의 라카제트의 포지셔닝입니다. 왜 저기 있지?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중앙 스트라이커가 저기까지 내려오는 건, 좌우 빌드업이 원활하지 않거나 경로가 막힐 때 잠깐(1~2초) 내려왔는 경우밖에 없습니다. 그마저도 곧바로 리턴패스만 주고, 바로 뛰어올라가서 다시 센터백과 경합하면서, 상대 포백을 밀어줘야 합니다. CF가 상대 센터백을 밀어내 줘야지만,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상대 센터백~미드필더 공간(포켓)이 창출됩니다. 이렇게 톱이 없으면 상대 센터백은 얼마든지 올라와있으면 되므로, 공간 자체가 나기 어려운 것이죠. 사카처럼 측면에서 최종 열을 조정해주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측면에서는 상대 열을 강제시키기 어렵습니다. 여차하면 센터백을 기준으로 오프사이드 트랩으로 간단히 막을 수 있고, 설사 놓친다 하더라도 중앙에서 놓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위협성이 떨어집니다.
여하튼 경기 내내, 빌드업 & 전개 과정마다 라카제트는 대부분 저 자리에 하염없이 계속 서 있고, 좌우 빌드업 및 전개가 완벽히 되었을 때, 그제야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톱이라는 본인의 역할에 대한 완전한 오해를 가지고 있거나, 아르테타가 본인에게 부여한 임무에 대한 몰이해가 있었지 않나 싶어요. 또는 아르테타의 지시일 수도 있겠지요.(라카제트가 85분 동안 저러고 있는데도 교체를 거의 끝까지 안 하고 방관한 걸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 정도로 아르테타에 대한 전술적 신뢰도가 저 역시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일전에 저 역시 라카제트가 톱으로 기용되면, 내려와 횡적으로 좌우 분배하면서 많은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마무리 국면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즉 235 형태가 완성되고, 상대 진영으로 선수들이 다 넘어온 상황에서의 이야기죠. 마무리 국면이라면, 최종열 5명 중 한두명이 내려와 좌우 분배에 기여해주면 훨씬 부드럽게 공격이 이어지고, 루트가 다양화될 수 있단 거죠. 그러나 우리 진영에서 공 돌리는 빌드업&전개 국면에서부터 톱이 이렇게까지 내려올 이유는, 또 내려와서 한참 머무를 이유는 하등 없습니다. 비효율적이기도 하고요.
톱 부재는 후반 갈수록 점점 더 심해졌는데요. 마르티넬리가 교체되어 은케티아가 교체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오히려 마르티넬리는 기계적 대체 톱 역할을 수행하느라 전혀 본인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반면, 은케티아는 오히려 LW에 맞게끔 마치 기존의 로우가 하던 역할을 그대로 물려받아 대신하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경기력이 더 나았습니다.
제가 지적하는 부분도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분명히 LW에서는 어떤 역할, 어떤 공간 점유를 해야 하고, CF에서는 어떤 역할, 어떤 공간을 점유해야 하는지 이미 다 완성본을 만들어놓고서, 괜히 복잡하게 오바메양 대체한답시고 저 역할들까지 바꿔버리니 선수들도 헤맬 수밖에 없고, 효율도 안 나온다는 게 요지입니다.
차라리 그냥 은케티아에게 기존 로우 역할을 시키고, 라카제트에게 기존 오바메양 역할을 시키면서, 그 기본 역할을 수행하는 와중에 아주 조금씩 선수 스타일에 따라 선호 플레이에 대한 자유도만 주었어야 합니다.
어쨌든 은케티아가 공 잡고 페널티박스까지 도달하는 동안 저 빈 센트럴 스페이스로 그 누구도 점유하러 들어가지 않습니다.
게다가 더 가관인 것은 설렁설렁 늦게 페널티박스에 도착한 3명이 공간 분배조차 되지 않고, 저렇게 뭉쳐서 페널티박스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은케티아가 드리블로 끌고 올라가면서 볼을 운반했지만, 저런 어이없는 분배를 하고 있으면, 페널티 박스 안에 줄 곳이 전혀 없죠. 그나마 박스 밖에 괜찮은 포지셔닝을 하고 있던 쟈카에게 공을 줍니다.
물론 후반 70분 넘어서의 상황이기 때문에 선수들의 체력 문제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톱 부재의 문제는 전반 초반부터 계속되었고, 특히 빈 센트럴 스페이스가 비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대신 제대로 점유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다른 동료들로부터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마르티넬리의 경우 대체 톱 역할을 부여받아 기계적으로 수행했다지만, 외데고르나 사카는 저런 상황이 나오면 본인 판단 하에 자연스럽게 센트럴 스페이스로 들어가 점유해주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럼 이쯤에서 85분에 교체 투입된 오바메양이 들어오고 난 이후, 팀이 어떻게 변하는지 볼까요?
들어오자마자 30초 이후의 상황입니다. 톱이 제 자리에 있으니까 에버튼 센터백을 비롯한 포백 라인이 후퇴할 수밖에 없죠. 게다가 오바메양은 라인 브레이킹 능력도 겸비했으니까요. 오바메양은 일부러 계속 센터백과 충돌하면서 상대 포백라인을 뒤로 밀어냅니다. 센트럴 스페이스가 점유된 상태이므로, 상대는 함부로 측면 쪽에 도움 수비를 가기도 어려워지고, 이는 볼을 전개 중인 우측 편대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페널티 박스 라인 근처까지 오바메양은 포백라인을 푸쉬합니다. 게다가 슬슬 중앙으로 더 들어오면서 상대 센터백을 유인하죠. 이렇게 되면 에버튼 센터백과 센터백 사이의 거리가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즉, 흰 공간으로 표시된 오른쪽 하프 스페이스가 활짝 열리는 거죠. 뿐만 아니라 에버튼 포백~미드필더 사이의 간격이 엄청 넓어지게 됩니다. 이게 포지셔닝 하나만으로 비롯되는 엄청난 효과입니다. 사실 아스날이 더 나은 공격을 하려면, 저 공간을 외데고르든, 파티든, 누구든 간에 더 잘 활용해야겠죠. 그러나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고, 일단은 저런 공간을 창출해내는 포지셔닝 자체가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톱의 부재가 매우 답답했던 것이고요.
이건 오바메양이 뭐 대단한 선수라서 나타난 효과가 아닙니다. 그냥 누군가가 포지셔닝하는 것 자체가 이토록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르테타가 구상한 235에서는 '중앙 고정형' 스트라이커가 필요하다고 한 겁니다. 오바메양이 채널 침투형에서 이 중앙 고정형 역할로 바꾸느라 많이 고생했을 거라고 언급한 적도 있고요. 겨울이나 여름 이적시장에 아스날이 공격수를 구매하더라도, 센트럴 스페이스를 점유하면서 센터백과 비벼주면서 포백 라인을 뒤로 물리고, 상대 수비수~수비수 사이의 공간 또는 포백 라인~미드필더 라인 사이의 공간을 창출해줄 줄 아는 선수가 필요합니다. 물론 그 와중에 오바메양보다 결정력이 좋고, 좌우 분배 능력까지 갖춘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중요한 건 일단 이것입니다.
몇 장면 더 볼게요. 오바는 85분에 투입되어 10분도 못 뛰었지만, 끝나기 직전까지 창출된 찬스가 오히려 그 전의 85분보다 더 질이 높습니다. (몇 번 반복해 말해지만 오바메양의 질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그만큼 중앙 고정형 톱의 중요성을 대변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위 그림에서도 결국 몇 초 후에 상기 언급했던 그 흰공간을 사카가 활용하게 됩니다. 이때 센트럴 스페이스를 점유하던 톱의 위력이 또 한 번 확인되죠. 여전히 센트럴 스페이스에서 빨간 박스로 에버튼 센터백 1명을 잡아두고 있던 오바메양은 사카의 중앙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을 보고는 노란 방향으로 뜁니다. 이건 사카의 쓰루 패스를 기대한 움직임일 수도 있겠고, 센터백을 그저 유인하려는 움직임일 수도 있습니다. 뭐가 됐든, 상당히 좋은 움직임이죠.
따라서 톱의 움직임에 완전히 속지는 않더라도 순간적으로 또 노란색처럼 에버튼 수비수~수비수 사이의 간격이 넓혀집니다.
사카는 이 공간을 보고 곧바로 중거리슛을 시도하죠. 물론 슈팅 타이밍이 약간 느려 블록되긴 했습니다만, 일단 포지셔닝과 이를 통한 공간 활용이라는 점에서 비록 실패하더라도 합격점을 줄 수 있는 공격입니다.
그다음은 90분 근처의 공격인데요. 이 공격 역시 전형적인 중앙 고정형 CF 포지셔닝의 혜택을 본 장면이었습니다.
움짤에서 중간중간 멈추면서 설명해놓았듯이, 오바메양이 중앙 센터백을 유인하면서, 또 수비수~수비수 사이의 공간이 열리고 외데고르가 그걸 활용하죠. 마지막에 오바메양에 건네주는 게 더 좋은 선택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외데고르의 슈팅도 나쁘진 않았습니다. 애초에 슈팅까지 이루어지는 과정 자체가 좋단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구너들의 탄식을 자아낸 오바메양의 미스 장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는 마갈량이 마치 중앙 고정형 스트라이커 포지셔닝 했는데요. 이 상황에서도 마갈량의 센스 덕분에 오바메양에게 아주 완벽하진 않더라도, 꽤나 좋은 찬스가 났죠? 심지어 마갈량마저도 저기에 포지셔닝만 하고 있으면 이런 찬스가 난다는 겁니다. 포지셔닝의 중요성은 입 아플 정도로 반복해도 그 중요성이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런 중요한 포지셔닝을 비워두고, 라카를 내려쓰고, 그 포지셔닝을 중간중간 마르티넬리의 대체 톱으로 어설프게 대체하려고 했다는 데에서 분통이 터지는 겁니다.
물론 오바메양은 또 찬스를 놓쳤습니다. 그러나 85분에 들어와 10분 동안 본인의 찬스뿐만 아니라 팀이 수많은 찬스를 창출하게끔 기여했죠. 오바메양이라는 선수의 덕보다는 포지셔닝 그 자체에 의한 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이런 방향성을 가지고 경기를 풀어가는 게 낫다는 겁니다. 오바메양은 놓치더라도 다른 선수들이 득점할 기회가 더 많이 생성되니까요.
오바메양을 쓰지 말고 다른 선수를 써보라는 게, 중앙 고정형 역할 자체를 없애라는 게 아니지요. 근데 아르테타는 잘못 이해한 듯합니다. 괜히 복잡하고 어설프게 대책을 고안해서 경기를 통째로 날려먹는 걸 보면요. 차라리 중앙고정형 역할을 명확히 부여하고, 좌우 편대를 활용하면서, 이렇게 시종일관 찬스를 만들고 상대에게 역습찬스도 주지 않은 채 지배하다가, 못 넣어서 무승부라도 하는 게 낫죠.
(2) 총체적 난국 포지셔닝 - 양 하프 스페이스 미활용
마르티넬리와 라카의 어설픈 스위칭, 그리고 라카제트의 톱 역할에 대한 몰이해, 또는 희한한 지시에 의해, 아스날은 심지어 양 하프 스페이스를 아무도 점유하지 않는 장면까지 만들어 냈습니다. 이건 포지셔널 플레이를 기반으로 하는 팀이라면, 매우 수치스러울 정도의 장면이죠.
공격 전개 과정인데 센터 서클에 있는 톱 라카, LW인데 대체톱하러 어설프게 센트럴 스페이스까지 올라간 마르티넬리, 반대 윙스페이스에서 완전히 고립된 티어니, 오른쪽 윙스페이스에 모여 전혀 생산적인 분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외데고르와 사카까지.....
전반에 이런 포지셔닝에서 비롯된 경기력을 보고도, 라카제트는 85분까지 끌고 갔다는 데서, 아르테타의 교체 시기 및 경기 운영 능력에 상당한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하프타임 라커룸 대화 이후에도 비슷한 경기력과 포지셔닝 미숙이 이어졌다는 것은 되짚어볼 만한 일입니다.
(3) 고질적인 침투 부재
물론 라카제트가 경기 내내 톱 자리를 비운 것은 아닙니다. 위와 같이 포지셔닝을 제대로 하고 있을 때도 있었는데요. 그러면 역시나 어김없이 상대 수비수~수비수 사이의 공간이 벌어지죠. 이건 오른쪽 사카가 상대 수비를 최소 2명 이상 끌어낼 수 있기 때문에, 센트럴 스페이스 포지셔닝과 결부되어 거의 공식처럼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이 공간을 잘 활용하느냐가 관건이죠.
그러나 고질적으로 외데고르는 저 지역 침투에 소극적입니다. 그런 면에서 외질과 상당히 흡사한데요. 여기서도 토미야스는 정발이기 때문에 크로스를 올릴 것이 거의 확실시되죠. 그런데 저 공간을 라카도, 외데고르도 침투하지 않습니다. 물론 실제 경기에서 토미야스의 크로스가 다소 부정확하기도 했지만, 애초에 저 벌어진 간격과 빈 공간을 활용하는 움직임을 취했는지 여부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위 장면 역시 마찬가지죠? 또 우측 하프 스페이스가 활짝 열리는데 외데고르는 침투할 생각이 없고, 심지어 마르티넬리와 라카제트는 또 둘이 같은 공간에 묶여있습니다. 마르티넬리가 확실히 대체톱으로서 상대 센터백과 함께 센트럴 스페이스를 점유하는 것도, 라카제트가 확실히 왼쪽 LW로 간 것도 아니고 그냥 어중 띄게 포지셔닝하고 있죠.
원래 저 정도 공간이 나면, 에버튼 센터백들은 긴장할 필요가 있는데, 이번 경기에서만큼은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신경 쓰거나, 마킹할 선수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4) 좌측 편대 미활용 - 티어니 독박 축구
확실한 LW 포지셔닝이 없으니, 티어니는 좌측에서 소위 말하는 독박 축구를 감행하게 됩니다. 물론 누노보다 티어니는 혼자서도 잘해요 스타일임은 자명하나,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완전히 고립시켜놓을 필요는 없죠. 저번 맨유전에서 누노가 고립된 것과 비슷한 형태입니다.
원래 로우가 하던대로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평범한 LW 포지셔닝을 마르티넬리나 라카가 명확하게 부여받아 소화했다면, 티어니의 고립을 훨씬 자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참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이것 역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다가 또 하나의 부수적인 역효과가 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죠.
위 그림처럼 왼쪽 윙스페이스~하프스페이스까지 티어니가 다 커버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죠. 심지어 아무도 하프 스페이스 포지셔닝조차 가져가지 않습니다. 마르티넬리, 라카, 쟈카처럼 좌측 편대를 구성해야 할 선수들이 죄다 센트럴 스페이스에 쓸데없이 모여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필요할 땐 점유하지 않더니, 필요 없을 땐 3명이나 점유하고 있죠..
반대로 제대로 돌아간 장면을 보며 비교해봅시다. 동료들이 하프 스페이스 정도만 제대로 점유해줘도 티어니는 훨씬 쉽게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위 그림에서도 여전히 라카제트와 마르티넬리는 무슨 마치 한 몸이라도 되는 것마냥 또 포지셔닝이 겹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쟈카와 더불어 하프 스페이스를 점유해주니까 에버튼 선수들이 윙스페이스에 있는 티어니를 덜 신경쓰게 되고, 티어니가 훨씬 자유로워집니다. 실제로 경기에서도 쟈카가 티어니에게 특유의 종패스를 넣어주면서 티어니의 크로스 시도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죠.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그냥 포지셔닝을 적절히 해서 하프 스페이스를 점유해주는 것만으로도 경기가 풀리고, 동료가 고립에서 해제되는 것이죠. 센트럴 스페이스만 그런게 아니라 경기장 모든 공간이 그렇습니다.
따라서 기존에 10경기 무패행진을 달릴 때, 본인이 직접 잘 구성해놓은 235 형태의 톱니바퀴들을 괜히 더 건드리면서 망가뜨리는 아르테타가 바보 같기도 하고, 더더욱 답답한 겁니다.
선제골도 뭐 대단히 어렵고, 복잡한 걸 소화해서 나온 장면이 아닙니다. 그저 원래 좌측 편대가 해오던 대로 삼각형을 구성해서 볼을 전개시켰을 뿐이지요.
그림에서 보다시피, 쟈카가 윙스페이스까지 지원해주러 갔고, 라카제트는 하프 스페이스에서 연결고리 역할, 그리고 티어니는 높은 위치에서 공을 받자마자 1on1로 직선 돌파 이후 크로스를 시도할 준비태세입니다.
그리고 마르티넬리와 라카제트의 겹침 포지셔닝이 없죠? 마르티넬리는 완전히 톱의 포지셔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처음부터 이렇게 명확하게 구분해서 쓰는 게 훨씬 낫다는 이야기입니다. (분통해서, 계속 반복하게 되네요. 죄송합니다)
이렇게 명확하게 롤이 나누어지자, 좌측 편대도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선수들의 포지셔닝 분배도 모두 잘 이루어져 있죠.
그러니 여기서 티어니가 누노와 다르게, 혼자서도 잘해요를 시전하면서, 수비수 한 명 달고도 질 좋은 크로스를 공급하면 득점 기회가 생성되는 겁니다.
(5) 우측 편대 문제점
이 장면 익숙하지 않나요? 뉴캐슬 전에서 마르티넬리의 골 장면과 상당히 흡사합니다. 당시에는 오바메양이 내려오면서 센터백을 끌어당기고, 마르티넬리가 대체 TOP 침투 움직임을 들어갔으며, 측면에서 공받은 토미야스가 얼리 크로스를 잘 찔러줬었죠.
여기도 거의 비슷한 움직임인데, 왜 안 통할까요. 일단 외데고르의 포지셔닝이 너무 낮은 것도 있겠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원인은 톱 부재입니다. 포지셔닝으로 압박을 못 주니까 상대 수비수~수비수 사이 간격이 넓어지지가 않죠. 답답한 사카가 뒷공간 자체를 침투하려 하지만, 라카제트가 애초에 올라와있던 적이 없으니까 센터백이 따라 유인되지가 않죠. 어차피 아래에서 노는 놈인데 뭐하러 따라가나요. 그냥 보고 있는 거죠.
3열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죠. 그러나 너무 많은 3열은 오히려 역효과를 냅니다. 여기서도 쟈카가 좋은 전진패스를 보내주지만, 라카제트와 외데고르의 포지셔닝과 활동반경이 겹치면서 아무런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하죠. 게다가 사카와 스위칭하고도 오른쪽에서 대체 TOP 역할로서 중앙 침투하는 마르티넬리의 동선 때문에, 공을 받은 라카제트는 어설프게 오른쪽 토미야스에게 벌려주지만, 측면 터치라인에 붙은 상태에서 크로스를 올리는 토미야스는 결코 위협적이지 않습니다.
외데고르도 내려오고, 라카제트도 내려오고, 오른쪽 공간이 발생하지 않으니까 자꾸 토미야스가 측면 터치라인을 타면서 오버래핑 시도하는 장면이 많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건 현재 아스날의 구성상 좋지 않은 환경입니다.
아르테타의 235에서 결국 토미야스는 인버티드 풀백입니다. 윙스페이스보다는 하프스페이스를 주로 삼을 때, 훨씬 안정감이 있고 공간 분배에 있어서도 효율성이 살아나죠. 게다가 토미야스 개인의 장단점을 고려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터치라인에 붙어 크로스하는 토미야스의 공격력은 상대방에게 그리 무서운 위협이 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토미야스의 이런 측면 터치라인 오버래핑이 자주 나온다는 건 경기가 잘 안 풀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뉴캐슬 전에서도 많이 나왔는데 그때도 안 풀려서 올라가 효과를 본겁니다. 당시에는 화이트로 인해 전술적 프리맨이 발생하는 더 좋은 환경이기도 했고요) 오늘 경기에서는 토미야스의 오버래핑이 정말 많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래 이어지는 (5)번 문제점과도 연결됩니다.
(5) 역습 저지선의 약화
오늘 아스날은 여러 문제점과 더불어 역습을 상당히 많이 허용한 편인데요. 이것 역시 라카-외데고르 조합의 문제점과 결부되었습니다.
위 그림과 같이 마르티넬리가 제대로 된 톱 포지셔닝을 한 상태에서는, 역시나 사카에게 에버튼 수비가 2명 이상 몰리면서 또다시 우측 하프스페이스가 벌어지죠. 이 공간을 누가 침투하고, 누가 활용하느냐가 관건인데요.
베스트는 라카가 활용하는 겁니다. 실제로 라카제트의 위치를 보면, 딱 아크 서클에 있는데, 이게 보통 로우가 즐겨하는 포지셔닝이죠. 로우는 이런 공간이 나오면 무조건 침투하는 선수입니다. 지금까지의 경기에서 로우가 저 자리에 있다가 똑같이 공간 나면 침투하는 장면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라카제트는 침투하지 않고, 그다음 차선책인 외데고르 역시 침투하지 않습니다. 사카와 함께 열을 맞춰 침투가 필요하지만, 외데고르-사카 조합이 생각보다 잘 맞지 않았던 것은 주발 문제도 있지만, 역시나 이런 부분이었다는 걸 일전에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결국 3번째 선택지로서 토미야스가 침투하는데요. 이것이 가장 3가지 중 가장 별로인 이유는, 일단 토미야스가 저 자리에 들어가서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딱히 없습니다. 사실상 들어가는 것은 미끼 움직임 정도의 의미밖에 못 가져요.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역습 저지선이 약화된다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쟈카, 파티, 토미야스가 역습 저지선을 이루고 있어야, 위 마무리 국면에서 턴오버가 나거나, 공격에 실패하더라도 화이트와 더불어 역습 저지 1.5열 마름모 형태를 만들면서 효율적인 저지가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토미야스가 침투 오버래핑, 언더래핑을 라카-외데고르 대신하다 보니, 역습 저지열에 외데고르가 대신 서게 되죠. 아래 그림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역습 저지선이 매우 약해집니다. 게다가 삼비보다 기동력이 더 떨어지는 쟈카가 나왔기 때문에, 토미야스의 오버래핑으로 인한 단점을 제대로 가려주지도 못 합니다. 이 장면에서 에버튼은 쭉쭉 페널티박스 근처까지 끌고 나오며 위협적인 역습을 단 번에 진행하고, 쟈카가 뒤늦은 파울로 프리킥을 얻게 됩니다.
기동력이 약한 쟈카의 단점이 이런 부분입니다. 차라리 끊으려면 진작 앞에서 의도적인 파울로 역습을 저지했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죠. 그러다 보니 낮은 지역까지 열심히 따라가다가 위험해진다 싶을 때 무리한 태클로 뒤늦은 파울을 범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물론 쟈카는 이번 경기가 장기 부상 이후 첫 경기임을 감안해야 합니다. 전체적으로도 컨디션이 아주 많이 올라온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요.
(6) 수비 복귀 및 가담 미흡
보통 아스날은 볼 소유권 없는 상황에서 볼이 우리 진영으로 넘어오면, 컴팩트 442 형태를 취한다는 건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이번 경기에서 유독 왼쪽 라인이 그러한 기본 형태에서 종종 이탈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위 그림이 대표적인데요. 무슨 역습하다가 뺏긴 트랜지션 상황도 아니고, 에버튼이 천천히 공 돌리면서 중앙 쪽으로 넘어오는 장면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르티넬리와 티어니의 포지션이 굉장히 이상하죠. 수비 복귀, 가담을 열심히 하지 않는 상황이 몇 번 보였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 몇 번 만으로도 굉장히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에버튼의 14번 타운젠드와 7번 히샬리송이 둘의 마크 없이 완전히 프리한 상태이며, 마갈량은 티어니가 늦게 복귀하자 이를 커버하기 위해 상당히 왼쪽으로 포지셔닝해서 화이트와의 간격이 넓어진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그대로 히샬리송의 골로 연결됩니다. 물론 VAR로 오프사이드 취소 처리가 되긴 했지만, 정말 아슬아슬한 상황이었고 사실상 실점이나 다름없는 매우 안 좋은 장면이었습니다.
(7) 트랜지션 국면에서의 문제
기존에 몇 번 지적한 적이 있지만, 오늘 경기에서도 어김없이 트랜지션 국면에서의 취약점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위 그림에서 다룰 취약점은 전술적인 측면이라기보다, 선수들의 성실성과 적극성과 이어지는 것이므로, 좀 더 실망적이었는데요.
그림을 보면, 토미야스보다 마르티넬리, 외데고르, 라카제트 모두 앞에 있습니다. 볼을 탈취하고 이제 앞으로 달려나가는 시점이죠. 라카제트는 곧 사카에게 공을 연결하고, 위 동그라미 친 4명은 모두 일제히 앞으로 달려갑니다. 트랜지션 수→공 상황에서는 얼마나 빨리, 얼마나 잘 분배되어 달리느냐가 관건이겠죠.
그러나 상대 페널티 박스에 가장 먼저 다다른 것은 놀랍게도 토미야스였습니다.
과연 마르티넬리, 외데고르, 라카제트가 토미야스보다 주력이 느려서 늦게 도착한 것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영상을 보면 토미야스는 미친듯이 성실하게 뛰는 반면, 나머지 셋은 적당히 뜁니다. 트랜지션 국면을 대하는 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적어도 오바메양은 주력이 줄어들었지만, 이런 식으로 트랜지션 찬스를 낭비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토미야스가 저 자리에서 크로스할 때까지 어느 누구도 토미야스에 앞서 페널티박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없었고, 찬스는 허무하게 낭비되고 맙니다.
수→공에서만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닙니다. 공→수 트랜지션에서도 문제가 많았는데요. 2실점한 실점 장면 모두가 공→수 트랜지션 국면이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위 움짤을 보면 알겠지만, 물론 볼 소유권을 탈취당한 것 자체가 파티의 개인 미스에 가깝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대처인데요. 물론 트랜지션 상황이다 보니 아주 잘 짜여진, 컴팩트한 대형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이건 리버풀처럼 트랜지션에 엄청난 강점이 있는 강팀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실점 장면에서 드러나는 1열 수비만큼은 빠른 개선이 필요합니다. 수비 시에 간격을 좁힐 필요는 있지만, 적어도 열이 2열 이상은 되어야 합니다. 흔히 말하는 텐백도 우리가 두줄 버스 세운다고 표현하는 것처럼요. 저런 식으로 6명이 나란히 1열 수비가 되면, 페널티박스는 근근이 막아낼 수 있겠지만, 그 앞 레드존에서 너무나 프리하게 됩니다.
당연히 에버튼 선수가 잘 차기도 했습니다만, 저 정도로 프리하게 둔다면 프리미어리그에서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의 킥력은 저 정도 기대치를 가지기 마련이죠. 운이 좀 따르지 않긴 했지만, 아스날은 개인 실수부터 1열 수비까지 여러 모로 이에 기인했기 때문에 책임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2번째 역전골 장면도 마찬가지인데요. 화이트가 올라와 쓰루 패스를 시도하다, 볼을 탈취당했죠. 여기서도 트랜지션 국면이므로 대처가 중요합니다. 역습 저지선을 구축하는 이유는 저런 상황에서 조금 고의적인 반칙으로 옐로 카드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트랜지션 국면을 종료시키고 아군의 수비진이 대형을 갖출 시간을 버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조건 볼을 재탈취, 재탈환하는 게 아니라 저지, 시간끌기, 방해가 주목적인 셈이죠. 그러나 위 움짤에서 확인할 수 있듯, 아스날은 쟈카, 화이트가 2번이나 흐름을 끊어낼 수 있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딪히지 않게 피해주는 모양새로까지 보이는군요.
그렇게 앞에서 끊어내질 않고 쭉 밀리다 보니, 1번째 실점 장면과 마찬가지로 또 자기들도 모르게 1열 수비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번에도 6명이죠? 숫자로는 5대 6이므로 절대 부족하지 않은데도, 1열 수비를 하다 보니 또 레드존이 비게 됩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킥력으로 또 원더골을 먹죠. 물론 이것 역시 잘 차서 원더골이라는 수식어가 붙여도 무방하긴 합니다만, 그 과정 자체가 워낙 안 좋았습니다.
(8) 개인 폼 문제
물론 선수들의 개인 폼도 문제였습니다. (이것조차도 훈련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냉정히 가장 좋은 폼을 보여주는 선수를 골라 선발로 내세워야 할 감독의 임무를 고려한다면, 아르테타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순 없을 겁니다)
특히, 파티의 경우에는 최근 경기들에서 폼이 올라올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오바메양보다 훨씬 전체적인 경기 영향력이 큰 포지션이기 때문에, 파티야말로 타선수로의 기용을 검토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신 여기서도 역할 자체를 바꿀 것이 아니라 역할은 그대로 두되, 선수 톱니바퀴를 바꿔 끼우는 식으로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에버튼 정도의 팀을 상대로는 삼비가 오늘 경기의 파티보다 더 못할 거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쟈카와 티어니 역시, 장기 부상에서 막 돌아오며 첫 복귀전을 치렀기에, 우리가 알던 그들의 최상의 폼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티어니는 대체적으로 터치가 안 좋았고, 활동량도 이전에 비해 줄어든 것 같았고, 쟈카는 아직 롱패스를 비롯해 패스에 대한 실전감각이 다소 떨어져 보였습니다. 이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지만, 현재 아스날에게는 그러한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빠른 폼 회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4.
지금까지 아스날에 대한 지적만 했지만, 이번 경기는 마이크딘 심판과 에버튼의 과격함의 콜라보레이션이기도 했습니다. 굳이 아스날이라서가 아니라, 이런 식이면 프리미어리그 발전에 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딴 식으로 리그 내 선수를 보호하지 않고, 경기 일정은 점점 늘려가며,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미래는 어둡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얼굴에 발이 가고, 심지어 상처까지 났다면, 고의성 여부는 차치하고 본보기적인 카드가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심리적으로도 위축되고 조심하게 되죠. 실제로 고드프리는 얄밉게도 후반 50분이 되서야 겨우 옐로카드를 받고, 그때부터 반칙을 하지 않습니다.
VAR까지 돌려보고서, 그 고의성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점(알아보고도 묵과했다는데 한 표입니다만), 카드조차 나오지 않았다는 점, 그 이후로 고드프리가 비슷한 위험성 있는 과격한 파울을 몇 번이나 반복적으로 했는데도 퇴장을 당하지 않았다는 점 등등.. 여러 모로 매우 불쾌한 경기였습니다.
따라서 위의 많은 지적들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선수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이런 무분별한 반칙들과 이를 묵인하는 심판과 함께 경기를 해나아가면서 분명히 정상적으로 플레이하는데 지장이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아르테타 감독 역시 오늘 고드프리의 행위들에 대해 이전 리버풀전에서의 마네 사건처럼, 폭발적인 항의나 어필을 한 번쯤은 했어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아래는 고드프리의 오늘 거친 플레이 모음입니다. 추가적인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보기만 해도 동업자 의식이 결여된 더러운 플레이들입니다.
5.
여하튼, 이렇게 전술적 큰 틀에서의 문제, 그리고 이로 인해 경기 내적으로 꼬여 부수적 역효과가 난 장면들, 애초에 아스날이 부족했던 부분, 개인 폼 문제, 그리고 거친 에버튼 선수의 플레이까지 다 짚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 이외에도 부족한 것은 결국 멘탈리티이기도 합니다. 최근 2경기 모두 역전당한 경기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위에서도 잠깐 살펴봤지만, 수비 포지셔닝이나 가담을 대충 한다든지, 또는 트랜지션 상황에서 체력이 후달린다는 이유로 적당히 달린다든지 등등 태도적인 측면에서도 문제시 되는 부분이 돋보인 것은 절대 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것마저도 다잡고, 분위기 반전을 꾀해줘야 하는 것이 감독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감독직이 어려운 것이겠죠. 그냥 전술적 플랜 A를 이쁘게 짜 놓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물론 감독 역할을 라커룸에서 대신해줄 만한 베테랑들의 부진이 팀 멘탈리티에 크게 작용하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라커룸 리더 격인 오바메양, 라카제트, 파티 같은 선수들이 그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야 팀 분위기가 좋을 텐데, 거꾸로 어린 선수들에게 부담만 얹어주고 있으니 분위기가 좋을리가요.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일단 큰 틀에서 아르테타가 어렵고 복잡하지 않게, 심플하게 가는 것입니다. 시계 톱니바퀴 하나가 부분적으로 무뎌졌다면 그에 적합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과한 조치도, 부족한 조치도 필요 없습니다.
맨유 원정과 에버튼 원정을 연달아 역전패하면서 분위기는 물론, 선수들의 자신감도 상당히 떨어졌을 거라 봅니다. 게다가 교체 순위에서도 점점 밀리는 1000억 페페를 비롯해 벤치에서도 이러면 점점 불만이 쌓이게 될 테죠. 게다가 공간 이해도가 워낙 좋아서 어느 포지션에 내버려두든 알아서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주는 만능키 스미스로우도 없습니다. 오늘처럼 거친 경기가 짧은 주기의 일정으로 계속 이루어진다면 앞으로 부상자는 점점 늘어날 겁니다.
과연 이런 악조건 속에서, 앞으로의 일정 동안 아스날이 반전을 이룰 수 있을지.. 큰 기대는 하지 않고, 걱정이 더 많지만, 그래도 묵묵히 지켜는 보겠습니다. 아스날 팬을 오래한만큼 이 정도에 멘탈이 터질 정도는 아니고요. 다만 이런 팬들의 믿음에 팀이 보답하는 일이 언젠가는 좀 오길 바랄 뿐입니다. 그 보답이 이왕 올 거라면, 현재 감독과 현재 선수들로부터 오는 거라면 더 기분이 좋겠네요.
이번에도 보기 어려운 새벽 5시 시간대에, 혹시라도 라이브 보신 분들,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반응형'Arsenal > Tal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데고르 소튼전 하이라이트 (데이터주의) (10) 2021.12.14 간단 경기 리뷰 (vs 사우스햄튼) (14) 2021.12.12 간단 경기 리뷰 (vs 맨유) (30) 2021.12.03 티어니와 누노에 대한 이야기 (6) 2021.12.02 사카 뉴캐슬전 활약상 모음 (데이터주의) (8) 2021.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