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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단 경기 리뷰 (vs 웨스트햄)
    Arsenal/Talk 2021. 12. 16.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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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드디어 승점 6점짜리 수준의 중요한 경기를 아스날이 잡아내면서 4위로 진입, 다시 챔스권 경쟁의 불씨를 살려냈습니다. 이번 경기는 단순히 경기 결과나 순위 때문이 아니라, 경기력 그 자체에서도 큰 칭찬을 해주고 싶을 만큼, 대단한 경기력이었기에 기분이 더 좋은데요. 가장 중요한 길목에서 승리를 따낸 것은 물론, 오바메양이라는 前 주장이 불미스러운 이유로 주장직을 박탈당하고 스쿼드에서도 제외되어 뒤숭숭할 수 있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라카제트가 대신 주장과 베테랑의 모범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어린 팀이 마치 스스로 자립하는 것처럼 아무 탈 없이, 아니 오히려 더 눈에 불을 뿜고 팀에 헌신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선수단을 독려하고 관리한 아르테타의 공도 컸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만큼 오바메양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이 큰 동요 없이 아르테타를 따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요. 역시 선수 시절도 그렇고, 통솔력이나 리더십 측면에서는 아르테타가 분명 큰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 글에서는 제목처럼 간단하게 오늘 경기의 큰 틀과 중요 포인트를 잡고, 선수 개개인에 대한 평가를 위주로 다룰 예정이며, 여기서 잡은 큰 틀과 중요 포인트를 별개의 경기 분석글에서 보다 세부적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어쩌다보니 이긴 경기에서는 항상 이런 식으로 글이 나뉘어 2개로 올라가게 되는데, 아무래도 팀의 승리가 저로 하여금 글을 더 많이 쓰게끔 동기 부여시키는 것도 있겠고(저도 사람인지라 기분에 따라 ㅎㅎ), 그 외에 최근 경기들에서 아르테타의 변화와 더불어, 팀이 점점 완성형으로 다가가는 단계를 밟고 있는 만큼, 그 단계들을 따로 짚어줄 필요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시즌의 행방을 가를 수 있을만큼 중대한 기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저번에 말했던 홈경기에서의 무서운 기세를 이어나갔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경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시즌 홈과 원정에서의 승점 차이가 조금 나긴 하지만, 강팀 원정이 상대적으로 많았다는 점, 강팀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일단 상대가 우리 홈으로 원정 올 때 두려움에 떨 수 있을 만큼 홈에서의 안정적인 경기력을 먼저 구축해놓는 게 알맞은 서순이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나쁘지 않은 징조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다만 에버튼 원정은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아르테타의 무리한 스위칭, 거친 에버튼과 마이크 딘 주심의 콜라보, 그레이의 원더골 등이 총체적으로 집합된 전형적인 안 풀리는 경기)

     

     

    2.

    경기 분석 칼럼에서 좀 더 상세히 다루겠지만, 오늘 경기의 포인트는 이제 아스날이 선수간 로테이션의 단계를 넘어서서, 전술간 로테이션의 단계로 진입했다는 부분입니다.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겠는데요. 아래와 같습니다.

    (1) 기존 비대칭 235 ↔ 쟈카가 내려오면서 325

    (2) 상대의 압박 강도에 따라 4231 ↔ 433 변환

    (3) 우측 전개에 따른 기존 비대칭 235 ↔ 대칭 235 (맨시티형 인버티드 풀백 2명)

    모두 각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전 칼럼의 주제로 삼든, 곁다리로 삼든 최소 한 번씩은 다뤄본 적이 있습니다. 허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이 3개의 상황에 따른 tweak 변환을 얼마나 자유자재로 하느냐, 얼마나 부드럽게 하느냐, 얼마나 상대의 스탠스에 맞춰 선수들의 판단 하에 똑똑하게 이루어지느냐입니다.

    오늘 경기가 매우 만족스러운 이유는 위의 포인트대로, 이러한 3가지의 tweak들이 자유롭고, 부드러우며, 똑똑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인 것이지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현재까지의 올 시즌 Best 경기로 뽑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는 의견입니다. 아마 많은 구너들도 동감할 테고요.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위의 3가지의 전술 간 로테이션이 일어나는 데 있어, 주요 역할을 하는 구심점 중 하나가 바로 쟈카라는 점입니다. 세부적으로는 이어지는 칼럼에서 다루겠습니다만, 쟈카는 분명 한계가 있고 완벽한 선수와는 거리가 먼 유형임에도 불구하고, 아르테타가 정말 쟈카를 잘 쓴다는 생각은 확실히 드는데요. 

    지난 에버튼전 분석 칼럼에서 쟈카를 올려쓰는 433을 다루면서도, 쟈카를 올려쓰는 것이 플랜A로 자리잡으면 그만큼 리스크를 질 수밖에 없다고 말씀 드린 바 있는데, 아르테타는 이러한 우려를 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정말 적절한 타이밍에서만 쟈카를 올려 쓰고, 또 필요할 땐 내려쓰고, 이 동선 분류를 정말 잘해놓았습니다. 쟈카에게도 완벽하게 주입시켰는지, 피치 위에서 동선을 보고 실제로 놀랐을 정도니까요. 이건 쟈카라는 선수가 뭐 경기력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아르테타가 쟈카라는 미드필더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전술적인 용도, 쓰임새를 거의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에 가깝습니다. (선수 자체는 여전히 장기 부상으로부터 조기 복귀했기 때문에 100%의 컨디션은 아직 아닌 걸로 보여요)

    여하튼 세세한 건 나중에 하기로 하고, 큰 틀에서의 이러한 전술 간 로테이션을 실제 피치 위에서 구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곧 아르테타의 아스날이 완성형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는 뜻입니다. 과거 축구처럼 우리가 442를 들고 나오면, 상대는 주야장천 442에 대한 대응만 하면 끝이던 시절이 아니라는 거죠. 이제 포메이션 하나로 주구장창 밀어붙이는 식의 축구는 현대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런 식으로 경기 중에 우리가 능동적으로 포메이션을 꼬아 변형할 수 있게 되면, 상대는 선수 각각에 대한 선택지, 패스 길에 대한 선택지 등을 넘어서서 이제는 전술에 대해서도 선택지가 강요되므로 그에 대한 대응이 정말 어려워지는 것이지요. 설사 대응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시의적절하게 이루어지는 건 더더욱 힘들고요.

    게다가 능동적이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2)번 같은 경우에는 수동적인 변화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상대가 전방 압박을 걸거나, 상대적으로 위치를 끌어올릴 때, 이에 대한 대응형, 맞춤형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자세한 건 경기 분석 칼럼에서 이어서)

    큰 틀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전방 압박이겠죠? 오늘 아르테타는 웨스트햄의 키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는 3선 미드필더(특히 라이스)가 최대한 볼을 잡고 편하게 전개하지 못하도록 이전 경기들보다 전방 압박의 강도를 높인 편이었습니다. 라카제트와 외데고르를 필두로 하여, 선수들이 잘 소화해주기도 했고요. 덕분에 라이스의 경우에는 볼을 최대한 편한 위치에서 받기 위해 엄청 밑으로 내려가 라볼피아나 형태를 취하거나, 때론 억지로 측면으로 빠지면서 여러 움직임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가져가야만 했습니다.

     

     

    3.

    큰 틀은 대략 여기까지 하고, 선수 개개인에 대한 평가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오늘은 시즌 베스트급 경기력이었던 만큼, 사실상 모든 선수들이 적어도 제 역할 1인분은 다 해주었는데요. 일단 공격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라카제트는 가면 갈수록 제로톱, 펄스 나인처럼 변해 가고 있지만, 그만큼 그에게 요구되는 다양한 역할들을 정말 잘 소화해주고 있습니다. 일전에도 말했듯이, 라카 톱을 쓰려면, 이렇게 라카를 중심으로 판을 짜주는게 옳습니다. 본인이 활약할 수 있도록 판을 짜주고 환경을 조성하면, 그 환경 내에서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는 결코 아니거든요. 물론 지금까지는 아스날의 2선 공격력이 워낙 빈약했기에 오바메양에게 톱을 맡기고 골에 대한 건 그가 다 해주길 바라는 성향이 있었지만, 슬슬 완성형의 모양새로 다가가는 아스날은 이제 달라졌죠. 2선의 공격력도 날이 갈수록 살아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젠 톱에게 득점에 대한 기대를 몰빵하거나, 득점에 대한 부담감을 필요 이상으로 쥐어줄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그만큼 가벼워진 톱의 부담을, 라카제트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윤활유의 역할로써 대체하고 있는 것이고요. 특히 오늘은 아마 아르테타가 상당히 흡족할만한 활약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까 위에서 전술 간 로테이션의 구심점 중 하나를 쟈카라고 했지만, 사실 또 하나의 구심점은 라카제트입니다. 그만큼 팀이 변형을 유연하게 가져가는 데 있어 그 시작과 중간, 끝에 모두 기여하는 자원인 셈이지요. 또 하나 칭찬하고 싶은 점은 리더십입니다. 저를 포함해 많은 구너들이 차기 주장 후보로 라카제트를 의외로 배제했는데요. 물론, 6개월 뒤에 자유계약으로 걸어 나간다는 점이 많이 작용했겠지만, 계약기간을 차치하고 본다면, 라카제트의 리더십 역시 훌륭하다는 생각입니다. 경기 위에서 선수들을 대표해 상대 에이스 라이스와 적절히 다퉈주면서, 필요할 땐 영리하게 파울도 얻어내고, 분위기가 과열되는 경우에는 동료들을 다독이며 진정시키는 역할까지... 베테랑이 이런 식으로 경기력과 팀의 분위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준다면, 어린 선수들이 신뢰하고, 믿고 따르게 되며 그 이상의 추가적인 시너지까지도 기대할 수 있게 되겠죠. 오늘 직접 얻어낸 pk를 실축한 것을 제외하고는, 흠잡을 데 없는 훌륭한 모습이었습니다. (pk조차도 잘 찼는데 파비안스키가 너무 잘 막은 것에 가깝습니다 ㅎ)

    마르티넬리는 정말 감독, 동료는 물론이고 팬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스타일이죠? 경기장 안에서의 헌신적인 태도는 물론이거니와, 한창 벤치를 달굴 때도 늘 훈련장에 가장 일찍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한다는 소식이 들려올 정도로 불평불만 없이 일관된 태도를 보여주며 기다려왔고, 드디어 본인에게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당연히 낚아챌 만큼 준비 자체를 너무나 잘해왔으니까요. 이런 선수를 어찌 미워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여러 면에서 한층 발전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아르테타의 말대로 이젠 앞만 보고 그냥 전속력으로 뛰던 선수가 아니란 말이지요. 템포를 조절할 줄 알고, 어느 때 어떻게 움직여야 효과적인지, 효율성을 따지기 시작했으며, 특유의 성실함이 이젠 수비, 미드, 공격 전방위적으로 모두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냥 무지성으로 라카제트와 과도한 스위칭을 하면서, 측면 버리고 중앙으로만 뛰어들어가던 게 불과 두 세 경기 전의 맨유, 에버튼전이었는데, 아주 빠른 속도로 전술을 이해하고 적응해나간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예상대로 오른쪽보다는 왼쪽에서, 그리고 누노 같은 유형보다는 확실히 티어니 같은 스타일과 합이 더 맞는 모습인데요. 이렇게 되면서 아르테타는 2선에 대해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사카, 로우, 외데고르에 이어 마르티넬리까지 있으니, 이제는 넷 중에 한 명은 벤치로 내려가야 하는데요. 다행히도 어차피 박싱 데이 일정이기 때문에 지쳐 보이는 선수를 내리면서 폼 좋은 나머지 셋을 선발로 돌려 쓰면 될 것 같습니다. 한편, 마르티넬리는 모든 선수들 중 가장 오바메양의 역할을 비슷하게, 많이 대체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습에서의 속도라든지, 전방 압박에서의 챌린지라든지, 박스 안에서의 움직임까지도요. 다만, 우려되는 부분은 경기 내내 열심히 뛰는 만큼 경기 후반부에 다리 근육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잦다는 건데요. 유리몸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부상에는 취약한 모습을 보였던 만큼 구단 측에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로우처럼 식단을 바꿔 체질을 개선하는 방안도 괜찮겠고요. 일단은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아 다행이고, 아무래도 오랫동안 경기를 뛰지 못했기에, 아직까지는 풀로 90분을 온전하게 버틸만한 몸상태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면 좋겠네요.

    사카는 오늘 많은 분들이 MOM으로 선정할 만큼, 말이 필요 없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습니다. 줄곧 말해왔듯이, 사카는 현재 아스날에서는 가장 유니크한 자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대에게 선택지를 강요하고, 최소 2명 이상을 끌어당기며, 적절히 양발을 사용할 줄 알고, 속도 붙은 상태에서는 속도 붙인 그대로, 속도가 없는 상태에서는 본인의 스킬셋을 활용해 상대를 공략할 줄 아는 유일무이한 선수죠. 게다가 최근 모습을 보면, 등지고 버틴다든가, 몸싸움, 밸런스 측면에서도 한결 나아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소 이른 비교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살짝 살라의 향기가 나고, 사카 스스로도 살라 같은 유형을 목표로 삼아 성장 및 발전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사카가 잘하는 것도 맞지만, 우측 편대에서 외데고르나 토미야스의 공도 빼놓을 순 없습니다. 이 선수들은 사카이 아이솔레이션 환경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여러 오프더볼 움직임을 가져가고 있습니다. 외데고르는 이전보다 침투 및 더미 움직임이 훨씬 많아졌고, 토미야스는 이제 언더래핑, 오버래핑, 로테이션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사카를 보조하고 있습니다. 정적인 상황에서는 사카가 2대 1패스를 칠 수 있도록 적절한 포지셔닝을 취하고 있고요. 즉, 우측 편대는 이제 이러한 공간 창출 방식이나 공격 루트 및 선수간 호흡이 사카를 중심으로 하여 잘 단련된 느낌이 든다는 겁니다. (물론 후반에 외데고르 대신 로우가 들어왔을 때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로우야 뭐 어딜가든 워낙 공간이해도가 좋아, 편대를 삐걱거리게 만드는 일은 없으니까요) 한편, 오늘은 수비 가담도 매우 좋았는데요. 전체적으로 몸상태가 가볍다보니,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만큼 수비도 평소보다 더 자주, 깊숙이 가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몇 경기 전에 부상으로 2번이나 드러누울 때는 정말 가슴이 철렁했었는데, 오늘의 모습을 보니 당분간은 몸상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더군요. 다만, 비슷한 부상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어느 정도의 관리도 필요해 보입니다. 특히 박싱데이 일정이니, 위에서 말한대로 넷 중 셋을 번갈아가면서 쓸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상태라면 로우가 사카 자리에 들어오는 것도 나쁘지 않아보입니다. 물론 사카의 역할을 그대로 대체할 순 없지만, 마르티넬리가 왼쪽에서 워낙 자연스럽고 좋은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굳이 우측으로 옮기기보다는, 좌, 중, 우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로우가 좀 더 희생적인 롤을 맡아주는게 팀적으로는 더 나아 보인달까요. 사카의 아이솔 느낌을 가장 비슷하게 낼 수 있는건 왼쪽에서의 마르티넬리라는 생각도 있고요. 여하튼 사카가 박싱데이 중 휴식을 취하는 날에는 아스날의 경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듯 합니다. 그만큼 대체하기 어려운 핵심 선수입니다.

    외데고르는 최근 몇 경기 좋은 폼을 이어나가면서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개인적으로 오늘 평소보다는 조금 지친 기색이 느껴졌습니다. 체력적인 문제는 아무래도 경기를 잘하냐 못하냐의 문제와는 조금 궤를 달리하는 별개의 영역인데요. 그럴 만도 한 것이 최근에 계속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활발하게 경기장 구석구석을 뛰어다닌 데다가, 오늘은 특히 웨스트햄을 상대로 경기 초반부터 강한 전방 압박을 구사했으니까요. 실제로 아르테타는 이를 잘 캐치하고, 외데고르를 후반 60분대에 빼주면서, 체력 관리+로우 경기 감각 끌어올리기의 일석이조 효과를 봤습니다. 로우가 추가골까지 넣었으니, 결과론적으로 완벽한 교체였다고 할 수 있겠죠. 한편, 차기 주장감으로 많이 거론되는 만큼 오늘도 라카와 더불어 동료들을 독려하고, 선수들을 대표해 심판에게 항의하는 등의 모습이 종종 보였습니다. 

     

     

    4.

    포백은 일단 기록적인 측면에서도 워낙 좋다는 게 입증됐죠? 위와 같이 오늘 경기에서도 아스날 포백의 ground duel이 네 명 모두 100%라는 통계 지표가 있었고요.

    꼭 이런 통계 지표가 아니더라도,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안정감만으로도 팬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토미야스는 갈수록 더 잘하는 느낌인데요. 웬만한 경기에서는 제가 이 선수를 MOM은 아니더라도, 늘 MOM급으로 뽑으며 언성 히어로라는 말씀을 드릴 정도로, 상당히 꾸준하면서도, 경기 영향력이 큽니다. 티어니도 결코 빌드업이 나쁜 선수는 아닌데도 불구하고, 토미야스 쪽으로 빌드업을 푸는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죠. 외데고르와 동선 정리도 지난 경기부터 잘 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본인이 스스로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씩 파악하고, 수행해 나가면서 시즌 초반과는 또 다른 의미의 발전이 있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갈수록 양발을 적재적소에 잘 사용하는데, 오늘 경기에서 평소처럼 사카로부터의 백패스를 우측 하프 스페이스에 받고 오른발이 아닌 왼발로 바꿔 크로스를 올리는 장면은, 순간적으로 칸셀루의 향기까지 나더군요. 정말 아르테타가 환장할만한 스타일의 선수입니다. 본인이 원하는 인버티드 풀백에 꼭 부합하는 선수를 영입한 것 같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놓치는 것 중 하나가 골킥에서의 기여인데, 램스데일이 우측으로 골킥을 찰 때, 토미야스를 겨냥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대신 토미야스의 자리는 파티가 채우고, 토미야스는 매우 높게 올라가서 공중볼 경합을 해주는데요. 일전에 페페처럼 키 큰 공격수가 없는 대신, 골킥을 받아주는 역할까지도 담당하는 것이지요. 뭐 수비력은 말할 것도 없고, 오버래핑, 언더래핑, 빌드업 다 잘해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스미스 로우의 추가골 역시 토미야스의 끈질긴 수비로부터 비롯된 것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아스날에서 사카, 로우 다음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선수가 바로 토미야스라는 생각입니다. 스타일 자체가 철강왕 같아서 걱정은 덜 되지만요 ㅎㅎ

    화이트야 이런 경기에서는 여지가 없이 잘합니다. 특히 상대가 내려앉았다가 역습하는 유형의 팀이라면, 더더욱 진가가 발휘되죠. 오늘은 개막전에서 어려워했던 이반 토니에 버금갈 정도로 까다로운 안토니오를 상대하는 거라 내심 걱정도 됐었는데, 다행히도 개막전과는 달리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공중볼 문제는 이적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던 이슈였는데, 요즘 아스날에서 하는 걸 보면, 이 선수도 확실히 젊은 선수인만큼 발전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공중볼 경합이라 해서 다 똑같은 게 아닙니다. 공중볼 경합을 하려면 그에 앞서 위치를 잡기 마련인데, 그런 위치를 점하는 능력에 있어서, 뒤로 내려앉았을 때보다, 공의 궤적을 예측하고 앞으로 튀어나가면서 커트하는 위치 선정이 더 안정적인 스타일이고,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이어지는 공중볼 경합에 더 강한 느낌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아무래도 라인을 좀 더 내리고 상대적 강팀을 맞이하던 브라이튼 시절보다, 라인을 올리고 상대적 약팀을 자주 상대하는 아스날이 화이트에게는 더 적합한 환경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마갈량은 언제나 잘 하지만, 티어니와 쟈카가 복귀하면서 왼쪽 수비에 있어 좀 더 안정감을 획득한 느낌입니다. 늘 잘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누노의 경우에는 워낙 수비할 때도 뛰쳐나가는 스타일이라, 그 뒤를 커버하느라 고생을 좀 했는데요. 게다가 대신 커버쳐줄 사람이 삼비이기도 했고요. (문제는 삼비도 뛰쳐 나가는 스타일) 반면, 쟈카는 기동력이 느려서 그렇지, 무턱대고 뛰쳐나가는 스타일은 아닌 데다가, 저번 경기에서도 살펴보았듯, 오늘도 아스날 수비의 취약점이 될 수 있는 딥 하프 스페이스를 지키는 포지셔닝을 기본적으로 잘 수행합니다. (수비력 자체가 뛰어나진 않지만 포지셔닝은 좋은 선수) 티어니 역시 누노와는 달리, 튀어나가기보다는 기다리는 수비에 능하죠. 튀어나가는 건 마르티넬리가 대신 커버해줍니다. 따라서 이런 2명의 안정감 덕택에, 자연스레 마갈량도 부하가 줄어드는 것이고요. 부하가 줄어든다면 그만큼 안정적인 모습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선수이고, 줄어든 부하로 인해 세이브된 체력이 요즘에는 세트피스 공격에서 쓰이면서, 그 진가를 발휘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에버튼전에 이어 오늘도 세트피스에서 멋진 발리킥으로 찬스를 잡았죠. 앞으로도 이런 선순환이 계속 이어진다면, 마갈량이 수비 이외에도 공격적인 측면에서의 기여까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됩니다.

    티어니는 이제 독박 축구 스타일에서 완전히 벗어난 모습입니다. 왼쪽에서 믿을 자원이 없으니, 대놓고 티어니에게 치달 후 크로스만 시키던 그 시절이 끝난 거죠. 이제 마르티넬리나 로우가 왼쪽에서 여러 역할을 해줄 수 있고, 반대의 우측 편대 역시 페페에게 공 주고 GO 하던 시절이 아니라, 사카를 필두로 하여 좋은 파괴력을 보여주고 있으니, 티어니의 공격적인 면에서의 부담이 줄어든 겁니다. 그리고 2번 목차에서 언급했던 큰 틀에서의 전술 간 로테이션으로 인해, 티어니 역시 인버티드 풀백을 종종 수행하면서 체력적으로도 세이브가 되겠고요. 또 티어니도 주발 의존도 정도를 제외하면, 원체 기본기가 좋은 선수다보니, 이런 미드필더에서의 역할도 준수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역습 저지 면에서는 이전의 삼비보다 훨씬 더 안정감이 있겠고, 필요한 순간에는 오늘 아쉽게 파비안스키의 선방에 막힌 그 슈팅처럼 대단한 중거리슛을 갈기기도 하죠. 경기 도중 몇 번 나왔지만 중장거리 롱패스도 정확합니다. 가장 좋은 건, 티어니를 무작정 올리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왔다 갔다 하면서 선수 본인의 템포 조절과 동시에, 팀적인 템포 조절도 가능하다는 겁니다. 이게 자연스러워질수록, 앞으로 아스날의 완성도는 더 높아지겠죠.

     

    5.

    오늘도 3선에 대한 이야기는 경기 분석 칼럼에서 어차피 많이 하게 될 터이니, 이 글에서 따로 별개의 평가를 하진 않겠습니다. 여전히 선수 개개인의 폼만 본다면 둘 다 팬들이 기대하는 100%의 모습은 아니지만, 전술적인 수행도 측면에서는 나름 준수한 수행능력을 보여줬다고 봅니다. 다행스러운 건, 파티가 그래도 쟈카와 호흡을 맞추면서 심적으로든, 경기 내적으로든, 좀 더 부담을 덜은 것 같은 느낌은 든다는 거예요. 이제 정말 쫄은듯한 소극적인 움직임은 줄어들고 있어요. 아주 더디지만, 조금조금씩 나아지는 방향이라는 뜻입니다. 다만, 네이션스컵이 취소되지 않는 한, 파티는 꾸준히 쓰일 것이기에 지금보다 더 속도를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편, 정말 고무적인 점은, 오바메양도 오바메양이지만, 로우빨 감독이라는 소리를 종종 들었던 아르테타 감독이, 로우를 2경기나 선발로 쓰지 않고도 모두 잡아냈다는 점입니다. 오늘도 후반에 교체로 들어온 로우가 추가 득점을 뽑아내며, 귀신같이 활약하긴 했습니다만, 실제 경기력은 전반전이 더 좋았다고도 평할 수 있을 만큼, 팀적으로 로우 없이도 완성도 있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로우가 여전히 아르테타 체제 하에서는 가장 중요한 선수 중 하나임은 자명하나, 적어도 아르테타가 선수 한 명에게 의존하는 시절은 지났다는 걸, 어느 정도 스스로 증명한 셈이죠. (커리어 초반에는 오바에게 많이 의존했고, 중반은 로우에게 많이 의존했었습니다) 물론 2경기로 확신하기는 이르지만요 ㅎㅎ

    일단 오늘 보여준 모습은 앞으로의 아스날에 대한 기대를 한층 높였는데요. 단지 챔스권 경쟁이 가능하다는 순위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경기력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도 단순히 433, 4231을 기반으로 한다기보다는, 경기 중에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를 혼용하는 느낌의 팀이 될 것이기 때문에, 겨울이나 여름 이적시장에서의 선수 영입도 이런 점을 염두해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아르테타가 아스날에서 추구하는 포지셔널 게임은 아주 민감한 시계와도 같아서 그 부속품들이 하나하나 바뀔 때마다 조심스럽고, 그 하나의 엇갈림만으로도 팀이 망가질 수 있다고 했었지요. 그런 측면에서 보더라도, 10경기 무패 행진을 달리던 팀원들 외에, 추가적인 부속품 마르티넬리, 티어니, 쟈카로도 이 시계를 그대로 작동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매우 큰 수확입니다. 사실상 이들이 기존 시계에 맞지 않는 부속품으로 전락하게 되느냐 마느냐 여부가 곧 아스날의 시즌 행방을 결정지을 수도 있을 만큼, 중대한 사안이었거든요. 그런데 기존 시계에 잘 맞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계를 업그레이드한 셈이 되었으니, 아르테타는 물론, 팬들의 표정이 밝아질 수밖에요.

    드디어 중요한 순간에서는 늘 미끄러진다는 최근 아스날의 오명을 씻고, 완벽한 승리를 따내면서 챔스권 경쟁에 다시금 추진력을 얻은 아스날입니다. 팀의 리빌딩을 본다는 건 고통스럽고, 인내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또 이렇게 정성 들인 유망주가 하나둘씩 차례대로 터지고, 감독이 구상했던 미래의 청사진이 슬슬 계획대로 조각이 맞춰져 나아가는 걸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는 것은, 예전에 언제나 챔스권은 보장되었던 그 시절의 벵거 아스날을 응원하던 것과는 또 다른 맛이 있는 것 같습니다. 뭔가 더 드라마틱 하달까요. 부디 이 기세를 이어나가 앞으로의 남은 12월 일정인 리즈, 노리치, 울브스 세 팀을 다 잡아내고, 새해에 맨시티전을 보다 마음 편하게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늦은 새벽 경기 시간대에, 경기 보신 아스날 팬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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